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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빚은 예스러운 품격을 간직한 “조계산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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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다리 승선교의 신비로움과 천연기념물 선암매화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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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8월 16일(월) 19:01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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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기획취재_ 산사의 하모니>
고창군 도솔산 선운사
해남군 두륜산 대흥사
양산시 영축산 통도사
안동시 천등산 봉정사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
공주시 태화산 마곡사
순천시 조계산 선암사
영주시 봉황산 부석사
<순서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선암사의 보물>
▲ 보물 동·서 삼층석탑
▲ 보물 승선교
▲ 보물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 보물 대각국사 의천 진영
▲ 보물 대각암 승탑
▲ 보물 북 승탑
▲ 보물 동 승탑
▲ 보물 대웅전
▲ 보물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
▲ 보물 선각국사 도선 진영
▲ 보물 서부도암 감로왕도
▲ 보물 33조사도
▲ 보물 동종
순천 선암사(順天 仙巖寺)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시간이 빚은 예스러운 품격을 간직한 “조계산 선암사”
무지개 다리 승선교의 신비로움과 천연기념물 선암매화의 향기
시간이 빚은 예스러운 품격을 간직한 조계산 선암사는 사진작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이다. 둥근 무지개 다리의 품 안으로 보이던 이층 누각의 신비로운 풍경과 다리를 후들거리게 만들던 깊은 ‘뒤깐’의 추억으로 먼저 다가오는 선암사는 명승이자 사적으로, 사시사철 아름다운 봉우리와 골짜기 곳곳에 사람의 웃음소리를 품고 있다. 매표소에서 일주문까지 10여분 걸어야하는 2차선 넓이의 길은 그 흔한 포장도 되어 있지 않지만, 활엽수 터널로 그늘 짙고 잘 다져진 자갈길이 발바닥을 지압하여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529년(신라 진흥왕 3)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창건설과 875년(헌강왕 1)에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창건설이 있는데 두 가지를 종합하는 학설이 일반적이다.
529년에 아도화상이 청량산 해천사라는 작은 암자로 시작하였고 875년에 도선국사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서 격을 갖춘 선암사(仙巖寺)를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풍수지리 사상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는 우리나라 국토 중 지세가 허하거나 결함이 있는 부분은 북돋우고 너무 강하거나 넘치는 부분은 억누르는 비보풍수로 고려와 조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도선은 남쪽 지방에 ‘암’자가 들어가는 세 개의 비보사찰을 세웠는데 그중 하나가 선암사이다.
신선 선(仙)자와 바위 암(巖)자를 쓰는 선암사라는 이름은 신선이 내려온 바위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절 주변에 있는 넓은 바위에서 신선이 바둑을 두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정유재란으로 소실된 절을 중창한 호암선사가 기도하던 배바위에 내려온 관세음보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고려 중기에 이르러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에 의해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짐으로써 오늘날과 같은 선암사의 대체적인 윤곽이 만들어졌다. 대각국사 의천은 천태종을 창건한 인물로 그 당시 선암사가 천태종의 중심사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각국사 의천 (大覺國師 義天, 1055∼1101)은 고려 제11대 문종의 아들로 그 당시 교종과 선종의 극심한 대립 상황에서 선(禪)과 교(敎)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천태종(天台宗)을 개창하였다. 지눌의 조계종이 선을 중심으로 선교일원(禪敎一元)을 주장하였다면 의천의 천태종은 교를 중심으로 선종을 수용하고자 한 특징이 있다. 선암사 대각암 뒤 언덕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각암 승탑이 있다.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대각국사 의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선암사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초토화되었고 1759년 대화재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자 선암산 중건을 주도한 상월대사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비보로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 절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로 고쳤다고 한다. 1823년 또다시 대웅전 등이 불타,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 4동을 중건하고 1825년 승려 심검이 산 이름을 조계산, 절 이름을 선암사로 복칭한다.
참방참방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초록 터널의 시원한 그늘을 즐기며 걷다 보면 길 왼쪽에는 조계산 선암사, 오른쪽에는 선교양종대본산이라고 새긴 돌 기둥이 본격적인 선암사의 영역에 진입했음을 알리며 오른쪽으로 동승탑밭도 보인다. 승탑밭에는 사자와 공양자상이 받치고 있는 삼층석탑 형태의 독특한 사리탑이 보인다. ‘화산대사 사리탑’으로 사자가 받치고 있는 기단 부분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다. 사자상 기단석 2점이 1986년 2월에 도난당하여 현재 도난문화재로 등록되어 있고 새로 조성한 석물로 대체한 것이라 한다.
곧이어 길 양편에 세워진 붉은 목장승도 만난다. 훼손이 심해서 더이상 갈라지지 않도록 철사로 동여맨 상태에서도 흰 이를 드러내는 미소를 보이며 제 역할을 다 하려는 듯하다.
선암사의 상징적인 보물로 반원의 아름다운 홍예교(虹蜺橋)인 승선교(昇仙橋)는, 길을 따라 무심코 걷다 보면 우거진 녹음에 가려져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승선교는 계곡을 건너는 무지개 다리지만 선암사로 들어가는 길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앞서 놓인 작은 홍예교를 건너면서 보아야, 승선교는 비로소 아름다운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계곡의 왼쪽 길에는 승선교를 보수하면서 빼놓은 화강암들이 퇴역한 용사들의 명예로움을 기리듯 전시되어 있어서 마음이 숙연해진다.
선녀들이 목욕을 하고 하늘로 올라 승선교라고 불린다는 이 무지개 다리는 1707년 호암대사가 자신을 구해준 관세음보살을 기리며 세웠다고 한다. 위로 갈수록 좁게 다듬어진 40개의 화강암이 밀착되어 만들어낸 반원의 형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여 감탄이 절로 나온다. 위로 보이는 푸른 하늘과 초록의 활엽수, 반원 안에 드러나는 건너편 강선루와 비단실처럼 흐르는 계곡물까지, 승선교는 미(美)적 감각을 자극하는 한 폭의 그림이자 시(詩)이다.
다리 아래 중앙에는, 숨바꼭질 중에 술래가 찾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머리를 내민 것처럼 용머리가 나와 있다. 용이 수마(水魔)로부터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신성한 영역에 잡귀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용머리를 자세히 올려다보면 용의 입에 매달려 있는 엽전이 보인다. 호암대사가 승선교를 만들기 위해 시주를 받았는데 다리를 세우고 세 닢이 남자, 다리를 보수할 일이 생기면 사용하라고 걸어놓았다고 한다.
승선교의 반원 사이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은 강선루(降仙樓)이다. 이층 누각의 형태로 선녀가 내려온 곳이라는 이름이니 이곳에 내려온 선녀들이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승선교에서 올라간 것이리라. 강선루의 현판은 두 개다. 들어갈 때 보이는 현판은 성당 김돈희의 글씨이고 나갈 때 보이는 현판은 석촌 윤용구의 글씨로 너무나 다른 분위기의 두 현판은 비교하는 재미를 준다.
강선루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둥근 타원형의 연못이 삼인당(三印塘)이다. 862년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가 축조한 연못으로 삼인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삼법인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변하며 ‘나’라는 고정된 실체도 없으므로 이를 깨달아 열반의 경지에 이르라는 불교의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왼쪽 언덕에는 하마비가 서 있고 맞은편에는 이층 높이로 성보박물관 현판이 보인다. 대나무 문이 닫힌 곳에는 넓은 차밭이 펼쳐져 있어서 이곳이 녹차로 유명한 사찰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굽어진 길 끝, 해태상이 양쪽을 지키는 아홉 단의 계단 위로 맞배지붕의 다포식 일주문이 웅장하다. 조계산 선암사라고 쓰인 앞면의 현판은 세로로 먼저 읽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이 가로로 먼저 읽어 ‘조산암 계선사’라고 하여 웃음을 준다. 일주문의 뒷면에는 ‘고청량산해천사’라는 전서체 현판이 선암사의 옛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일주문에 들어서면 다시 높은 계단 위 이층 누각 형태의 범종루가 보인다. 선암사에 없는 네가지는 사천왕문, 대웅전 어간문, 대웅전 협시보살, 석등이다. 그래서 일주문 다음 바로 범종루로 진입한다.
범종루 현판 아래 ‘태고총림조계산선암사’라는 또 다른 현판은 유일한 태고총림으로서 선암사를 소개한다. 총림(叢林)이란 참선수행기관으로서의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하는데, 선암사는 태고종의 총림이다. 태고종은 대처승과 사찰의 개인소유를 인정하는 등 조계종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선암사는 형식적으로는 조계종 제20교구본사이나 실질적으로는 태고종에서 운영하는 상황이다. 양쪽에서 모두 소유권을 주장하는 복잡한 상황으로 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앙금이 있는 듯하다. 인간 사회 어느 곳이나 파벌 간 갈등은 사라질 수 없는 모양이다.
선암사는 일주문에서 진입할수록 한 단씩 높아지는 경사가 7단으로 구성되어, 각 단마다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일부러 찾지 않으면 보기 어려운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이곳저곳 숨어 있다.
범종루 누하(樓下)로 경내에 진입하면 뒷모습을 보이는 건물이 만세루이다. 만세루를 옆으로 비껴 돌면 만세루, 심검당, 설선당으로 둘러싸인 절 마당에 동쪽, 서쪽에 쌍둥이 같이 삼층석탑이 있고 한 단 위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응향각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동·서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며 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1996년 탑을 해체 복원할 때 동쪽 탑 1층 몸 아래에서 사리 1과가 들어 있는 금동사리함과 청자, 보물로 지정된 백자 등이 발견되었다.
보물인 중심법당 대웅전은 중앙의 어간문이 없는 특이한 구조이다. 1824년 중창된 건물로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민흘림 기둥 위로 겹처마 팔작지붕이 날아갈 듯 날개를 펼쳤다. 활짝 펼친 처마 아래 다포식으로 배치된 화려한 공포는 웅장하면서도 섬세하여 아름답다. 대웅전의 화려함은 내부 포작과 우물천장에서 극치를 보이는데 특히, 몸통을 길게 드러낸 네 마리의 용 장식이 독특하다. 주불로 모신 석가모니불은 좌우 협시불이 없다는 점도 선암사 대웅전의 특징이다.
대웅전 영역에서 한 단 오른 팔상전 영역 뒤로 한 단을 또 올라 팔상전과 지붕을 맞대듯 가까이 있는 건물이 원통전이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셨기 때문에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아담한 원통전은 걸림이 없는 지혜를 뜻하는 주원융통(周圓融通)한 자비를 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 독특한 정(丁)자형 팔작지붕과 중앙 꽃살문, 궁창의 조각, 조선 순조임금의 친필 현판으로 유명한 건물이다.
원통전 뒤로는 천연기념물 선암매가 희고 붉게 피어 봄마다 장관을 이룬다. 선암사의 자연이 아름다울수록 종파 간 갈등으로 얼룩진 선암사의 현실이 안타깝고 저마다의 이권과 감정으로 갈래갈래 분열된 인간의 삶이 슬프다. 주원융통한 자비는 어디서 구할 것인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 사진 유석영, 조창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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