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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출신 최여겸(마티아) 순교한 개갑장터 소재

구한말 의병 물자보급과 연락처 활용으로 폐쇄

2021년 10월 01일(금) 14:22 [(주)고창신문]

 

ⓒ (주)고창신문

석교리(石橋里)는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고창군의 최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석교리는 창촌마을에 작은 돌다리가 있어서 ‘독다리’ 또는 ‘석교(石橋)’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마을의 형성은 1400년대 초에 창원 황씨(昌原 黃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본래는 무장군 동음치면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통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동촌리(東村里), 남동리(南洞里) 다옥리(多玉里)를 병합하여 석교리가 되었고, 공음면에 편입되었다. 공음면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곳은 전체적으로 평지이며, 동쪽 일부지역이 산지이다. 영광군 홍농읍과 경계지역으로 법성포와도 가까운 거리이다. 석교리는 동촌, 창촌, 남동 등 3개 행정 분리와 동촌, 창촌, 남동, 각동 등 4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86세대, 139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개갑장터는 무장과 법성창을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석교리에 있었다. 조선말 효자인 영모당 김질(金質 1496∽1561)의 효성에 감동한 무장현감이 장터를 만들어 주었다.

김질은 안동 김씨로 공음면 칠암리 개가리(현 갑촌마을)에서 출생하였다. 효성이 지극하고 부모, 조부모 등이 상을 당했을 때 12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꿩고기를 몹시 좋아해서 그는 매년 12월 제삿날에는 짚신을 미리삼아 집에서 8km나 떨어진 안자시장에 가서 짚신을 팔아 꿩을 사서 제물로 올리곤 하였다. 한해는 눈이 많이 와서 제물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크게 걱정하면서 불효로 인해 하늘이 내린 벌로 알고 제삿날을 맞았다.

그런데 석양 무렵 갑자기 꿩 한 마리가 부엌으로 날아 들어와 벽에 부딪쳐 떨어졌다. 김질은 하늘에 감사를 드린 후 그 꿩을 제물로 무사히 제사를 모셨다. 그 후 어느 해에도 눈이 많이 내렸으나 짚신을 등에 지고 눈길을 헤치며 제물을 구하기 위해 해리시장에 가고 있었다. 마침 무장 원님이 그곳을 행차하다가 추운 날씨에 무엇 하러 가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원님은 김질의 효성을 극찬하고 그를 위해 이곳의 개갑장터를 세워 주었다. 공음면 칠암리 갑촌마을에 있는 도암서원 내에는 김질의 정려가 있다.

도암서원은 김질 등 3명을 주벽으로 세운 사액 서원이다. 임진왜란 때 다른 사당이나 서원은 잿더미로 변했어도 영모당의 현판에 ‘효자 진사 김질지려’를 보고 왜군들도 감히 범하지 못하였다 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명나라에서 우리나라 충렬·효행을 물어와 안찰사 민성휘(1582~1648)가 김질의 효가 으뜸이라고 천거하여 명나라 황제가 명종 원년(1546)에 친필로 ‘효자 진사 김질 지려 가정 병오 천조 정려’라 사액하여 현재도 봉안각에 현판이 있으며, 정문을 세워주는 등 특별히 포상하였다 한다.

개갑장은 인근에서 나오는 수산물과 농산물 등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유명하였다, 영광 법성포가 가까운 거리에 있고, 바로 지근거리에 배가 드나들던 석교창은 신안군 등 섬들에서 키운 소를 배에 싣고 와 파는 우시장이 설 정도로 규모가 컸다. 당시에 시장일대에만 100여세대가 살았을 정도로 번창하였다. 한일합방 이후 의병들이 의병활동을 위한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하면서 일제에 낙인이 찍혀 중앙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폐쇄시켰으며, 지금은 시장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또한 개갑장터는 공음면 칠암리 갑촌마을 출신 순교복자 최여겸(崔汝謙, 1763∽1801)이 1801년 있었던 신유박해 때 순교한 성지이다.

최여겸의 본관은 전주(全州), 세례명은 마티아, 자는 여겸(汝謙)이다. 무장현 동음치면(현 고창군 공음면)에 거주하고 있던 전주최씨 현감공파의 후손이라고 전해지나 상세한 계보는 확인되지 않는다. 최여겸은 일찍이 ‘전라도의 사도’라 불리는 윤지충(尹持忠, 1759∼1791, 바오르)을 찾아가 천주교 교리를 배웠다.

그 후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를 가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李存昌, 1752∼1801, 루도비코)을 만나 그에게 교리를 배우고 영세를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신앙심이 더욱 공고해져 고향에 온 그는 교리를 충실히 따르며,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여 흥덕, 고창, 영광, 함평 등지에서 28명을 입교시켰다. 조선 순조 1년(1801) 정월에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처가가 있는 충청도 한산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입교시킨 신자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신자들이 체포되고, 문초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드러나 그 해 4월 13일에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한산관아에서 심한 문초를 받고 무장으로 이송되었으나 다시 전주감영으로 옮겼다. 그 후 서울에 있는 형조로 압송되는 과정에서 배교(背敎)를 강요당하며 심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이 “십계명을 버릴 수 없고 죽음을 택하겠다.”라고 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형조는 그 해 음력 7월 13일 사형을 선고하고, 중죄인은 원래 살던 지역에서 형을 집행하여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는 해읍정법(該邑正法)의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그는 다시 무장현으로 이송되어 개갑장터에서 음력 7월 19일 참수형을 받고 당시 39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기록에 의하여 확인된 내용을 보면, 그는 횡성에 유배된 조카 최수천, 전주에서 형벌로 순교한 최일한, 흥덕은 청도에 유배된 김처당, 영광에서 순교한 이화백, 함평은 평산에 유배된 남중만 등을 입교시켜 전라도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중 한사람으로 활약하였다.

1801년 순조가 등극하면서 천주교는 참혹한 박해의 시기가 왔다. 특히 전라도에서는 유항검을 비롯한 200여 명이 체포되어 의금부로 압송됐다. 앞서 순교한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6대 손으로 고종 4촌인 정약전·약용 형제들과 교류를 통해 김범우와 알게 되어 천주교 입문 서적을 입수, 입교하게 됐다. 윤지충의 공술기에 의하면 무장 사람 최여겸이 찾아와 교리를 배웠다고 전한다.

순조실록의 순조 1년(1801) 7월13일 정해조에 보면 ‘호남의 한정흠(韓正欽 1756∼1801, 스타니슬라오), 최여겸, 노복 김천애(金千愛 1760∼1801 안드레아) 등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여 그릇된 방면으로 인도하고, 독실하게 믿으며 따라붙어 익혀서 십계명을 버리기 곤란하며, 한 번 죽음을 달갑게 받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울러 다시 자백을 받은 뒤 전주 감영으로 압송하여 각각 그 고을에서 사형에 처하소서’라 하였다. 이렇게 해서 최여겸 등 세 사람은 7월19일 참수 치명한 것이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여겸 순교지는 지난 2004년 부지매입을 시작으로 2009년부터 5,000여평 규모의 ‘최여겸 마티아 순교터 성지조성사업’을 시작하여 12m의 순교 헌양탑과 야외제대 벽면에는 최여겸 순교자의 활동상과 순교를 주제로 벽화가 있다. 또한 400m 길이의 십자가길, 순교지 표지석, 부활 동산 등이 있는 서남지역의 대표적 성지로 상징되고 있다.

2010년 6월 최여겸은 ‘순교자 123위와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하여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24위의 시복식을 집전할 때 시복되어 복자품에 올랐다.

고창군은 조상의 삶이 스며있는 개갑장터와 신유박해로 순교한 최여겸 순교지의 역사적 의미를 후손들에게 길이 보전하고자 2004년 6월 고창군향토문화유산 제 1호로 지정하였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온 모든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도마경기에 출전하여 우리나라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양학선 선수가 이 곳 출신이다.

1992년 12월 6일 석교리 남동마을에서 출생하여 어렸을 때 미장기술자인 부친이 광주로 이사했다. 양 선수는 광천초, 광주체육중, 광주체고, 한국체대, 한국체대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양학선이 체조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형인 양학진이 초등학교 시절 체육특기생으로 다니던 체육관에 따라가 기계체조를 처음 접하였는데 양학선의 재능을 눈 여겨 본 감독에 의해 기계체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중3 때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해 우승함으로서 대성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국내활동은 차치하고 국제대회만 보더라도 2012년 런던올림픽 체조(도마)에서 독특한 기술로 금메달을 딴 것을 비롯하여 2011년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 금메달과 단체전 동메달,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인과 단체전에서 각각 은메달을 땄다. 2013년 카잔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과 2015년 광주 유니버시아드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국위선양에 앞장선 선수이다.

그동안 잦은 부상으로 고생하던 양 선수는 금년 일본에서 개최한 토쿄올림픽 출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였다. 광주에서 생활하던 부모님은 2000년대에 고향인 석교리 남동마을에 귀촌해서 생활하고 있다.

내년 대통령선거에 민주당으로 출마한 이낙연 후보(전 국무총리)의 외갓집도 석교리에 있다.
공음면 석교리는 전국에 소문났던 개갑장터로 유명세를 탄 곳이다. 인근에 있던 석교창까지 배가 들어와 전남북의 많은 사람들이 개갑장터를 이용하였다. 구한말 조상들은 의병활동을 하면서 개갑장터를 이용하였고, 신유박해로 순교한 최여겸의 순교터가 있는 성지이다. 또한 런던올림픽에서 체조사상 첫 금메달을 딴 양학선 선수도 대한민국 체육사에 영원할 것이다.

모든 것을 석교리의 역사라고만 생각 말고 우리지역, 우리 조상, 우리 민족,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의식전환으로 후손에게 길이길이 물려주는 자랑스런 군민이 되도록 노력하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조재길 시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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