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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야학에서 열정으로 가르친 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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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김동식 (전)교장, 자연환경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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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1일(목) 22:43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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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인터뷰_김동식 (전)교장, 자연환경해설사
학교와 야학에서 열정으로 가르친 보람
고창을 레포츠 고장으로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 싶어
“야학에 나오는 학생들은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한(恨)이 있어서 정규 학교 학생보다 대체로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크다.” 오래전 학교와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김동식 (전)교장은 “생업 때문에 낮에는 일하고, 밤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야학에 나와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야학에서 가르치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김동식 (전)교장 덕분에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교까지 졸업한, 그 옛날 야학의 제자들은 지금도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제도권 교육에서 소외되어 국가의 손길조차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오직 보람 하나로, 보수도 명예도 없는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야학 제자의 제보와 요청으로, 영선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정년퇴임 후 지금은 고창운곡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 고인돌탐방안내소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김동식 (전)교장을 만났다.
1. 평생 학교 교단뿐 아니라 야학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삶에서 우연히 처한 상황 속에서도 많은 선택지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가르치는 일을 선택하였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타고난 본성과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전북대학교에 다닐 때도 야학 교사로 활동한 일이 있었고 농약학을 전공하여, 농약제조회사를 들어가라는 교수님의 권유도 마다하고 교사의 길을 걸었다. 고창에서 야학을 시작한 것도 갑자기 나오지 못한 야학 선생님 시간을 잠시 대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모든 일이 우연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필연이었던 것 같다.
2. 야학에 보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직장생활에 야학까지 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나?
야학 제자들이 고구마 쪄오고 옥수수 쪄오고 그게 다 보수지 무엇이었겠는가? 조부께 한문을 배우면서 어린 마음에 적선(積善)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다. 물질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선도 쌓이고 악도 쌓인다. “남을 도우면 전쟁이 나도 죽지 않는다”고 하셨던 조부의 말씀은 좋은 일은 언젠가 좋은 일로 돌아온다는 인과응보의 가르침이었다. 적선(積善)은 수억의 재산보다 값지다는 가르침이 삶의 기본 방향이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야학에서 가르칠 수 있었던 힘이었다.
3. 젊은 시절에는 보통 도시에 나가서 살고자 하는데 도시에서 오히려 고창으로 돌아온 이유는?
등 굽은 소나무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돌이켜보니 형제 중 공부를 제일 못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대처보다 고향에서 나를 필요로 하였다. 대학, 군대, 직장생활 때문에 고향을 떠나있었던 10년 외에는 언제나 고창이 삶의 터전이었고 그만큼 애정이 깊다.지금 해설사로 일하고 있는 운곡람사르습지 자연생태공원은 조성 당시부터 역할을 하여 특별히 애착이 있는 곳이다. 시간이 더 흘러서 해설사도 못하는 나이가 되더라도 날마다 쓰레기 줍기라도 하면서 이곳을 가꾸고 싶다.
4. 언제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신데 행복론을 소개한다면?
행복하기는 쉽지 않지만, 행복을 위한 방향은 잊지 않으려 한다. 만족(滿足)이라는 한자는 찰만(滿)에 발족(足)이다. 발까지만 차면 충분하다는 선인(先人)의 지혜가 담긴 말이라고 생각한다. 가슴까지, 혹은 꼭대기까지 채우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지 만족이 아니다.조상들이 딸을 낳으면 심었던 오동나무는 빨리 크면서도 고급 가구나 악기를 만들기 좋은 단단한 나무인데 그 가지를 잘라보면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있다. 오동나무가 강한 이유는 자신을 비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움으로써 부드러워지고 여유가 생겨 위기에도 융통성있게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또한, 학교 제자, 야학 제자 등 찾아주는 제자가 있다는 것이 교사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제자들과 정담을 나눌 때면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힘이 난다. 기억해 주는 제자가 있었기에 고창신문 인터뷰도 하게 되지 않았는가? 쑥스럽긴 하지만 즐겁고 의미있는 이 시간이 쌓여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다.
5. 앞으로 계획하는 일이 있다면?
대학 다닐 때 전북대 산악회장으로 활동할 정도로 산을 좋아하였고 고향에 돌아와서도 주말이면 학생들과 함께 선운산, 지리산 등 온 산을 누비고 다녔다. 그 제자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각 대학의 산악회장을 하였고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제자도 있다. 지금은 다리가 불편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열정이 가득하다. 고창은 암벽등반, 산악자전거 등 레포츠에 적합한 천혜의 장소가 많다. 고창의 젊은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등반, 산악자전거를 즐기도록 기반을 조성하여 고창을 레포츠의 고장으로 만드는 일에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다.
유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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