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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만 감싼 해상교량, 고금, 장보고, 신지, 완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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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투구형상화 주탑과 전진하는 운동감 표현한 비대칭 경간구성, 완도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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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1일(목) 09:48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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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① 경남 마창대교
② 경남 창선·삼천포대교
③ 전남 김대중대교·칠산대교·영광대교
④ 전남 돌산대교·화태대교
⑤ 전남 백야대교·화양조발대교·둔병대교
⑥ 전남 팔영대교·적금대교·낭도대교
⑦ 전남 고금대교·장보고대교·신지대교·완도대교
⑧ 충남 보령해저터널·원산안면대교·안면대교
⑨ 서울 경기 남양대교·양화대교
고금대교, 장보고대교, 신지대교, 완도대교로 이어지는 국도 제77호선은, 때로 제23호선, 13호선과 조우하며 강진군에서 완도군을 돌아 해남군에 상륙함으로써 강진만을 호수처럼 둘렀다. 네 개의 다리 중 개통이 가장 늦은 2017년 장보고 대교 개통으로 고금도와 신지도의 단절구간이 이어져 이 구간의 77번 국도는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번 여정은, 고금대교가 한 다리를 걸친 강진군 마량항에서 시작된다.
영랑과 다산의 숨결을 간직한 강진군의 아름다운 바닷길을 따라가면 고금대교가 바라보이는 마량항에 이른다.
오래전 들렀던 기억으로 작고 한적한 항구라고 생각했던 마량항은 식당과 수산시장 등이 들어차 변화된 모습이 느껴진다.
정오가 지난 시간인데 마량항의 수협 위판장에는 수산물 중개가 시작되었다. 상자에 담긴 생선은 문어와 가오리이다. 문어와 가오리가 크기별로 상자에 담겨 가지런히 놓이고 사람들도 그 앞에 줄지어 선다. 오전 7시 반과 오후 1시 반에 열리는 중개시장은 마량항의 활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마량과 고금의 활발한 교류를 뒷받침하듯 고금대교는 차량 통행이 많다.
연륙교인 고금대교는 1999년 2월 12일 공사를 시작하여 2007년 6월 29일 개통식을 했다. 고금대교가 개통되기 전에는 강진군 마량면에서 고금도로 가려면 배로 40여 분이 걸렸다고 한다. 배를 가진 선주가 아니고서는 배가 움직이는 시간을 맞춰야 했을 터이니 사실은 이래저래 한나절이 족히 걸렸을 것이다.
고금대교의 개통으로 마량면과 고금면은 5분 거리로 가까워져 주민의 교통 편익 증가뿐 아니라 농·수산물의 물류 수송과 관광 사업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었다.
중로식 강아치교 형식의 고금대교는 마량항에서 보면 아치의 선명한 곡선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중로식 강아치교’라는 말처럼 도로가 아치의 중간 부분을 지나고 철제로 만들어진 아치교이다.
총길이는 760m이고 교폭은 13.5m로 왕복 2차로 양쪽에 철제 분리대로 구분된 보도가 있다. 아치교 부분의 길이는 310m로 아치구간의 최대경간은 160m이다. 가설(架設)은 철제 아치를 해상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 올린 일괄가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부분 해상교량의 발주자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인데 비해 고금대교의 발주자는 전라남도인 점이 특이하다. 남양건설(주), 풍림산업(주), 서희E&C가 시공하였다.
교각의 기초는 우물통기초로 ‘우물통’이라는 용어가 모양을 짐작하게 하듯, 원형 또는 타원형의 철근 콘크리트 통을 가라앉혀 지반이 단단한 부분에 이르면 내부를 콘크리트로 충전하여 기초를 다지는 형태로 주로 연약한 지반에 사용되며 최근 조사하는 대부분의 다리가 우물통 기초이다.
강진군 마량면에서 고금대교를 지나면 완도군 고금면이다. 예로부터 군자가 많아 고금도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고금도는 북쪽으로 강진군, 동쪽으로 약산도(조약도), 남쪽으로 신지도와 완도, 서쪽으로 해남군으로 둘러싸인 섬이다. 강진군과는 2007년에 연륙교인 고금대교로 이어졌고 약산도와는 1999년 개통한 약산대교로, 신지도와는 2017년 개통된 장보고대교로 이어져 신지도에서 완도로 가는 신지대교와 완도에서 해남군으로 나가는 완도대교를 통해 다시 육지로 돌아온다.
간척사업으로 고금도의 일부가 된 묘당도에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충무공유적이 있다. 1598년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에 충무공이 이곳에 진을 치고 머물렀으며 이충무공의 사당,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의 영구(靈柩)를 83일간 봉안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고금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에서 동쪽으로 좌회전하면 도로는 약산도를 향한다. 고금도와 약산도를 이으며 1999년 완공된 약산대교는 77호선 상의 대교는 아니지만 완도군의 연도교 중 첫 다리로서의 의미가 있다. 하로아치교 형식으로 최대 경간장이 100m, 전체 길이가 306m의 짧은 다리이다.
약산도는 원래 이름이 조약도였는데 약초가 많아 약산도로 불리게 되었다. 방목 흑염소들이 약초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더욱 약효가 좋다고 알려져 약산도의 흑염소는 궁중 진상품이었고 지금도 보양식으로 유명한 흑염소탕을 먹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와 고금도에서 신지도로 향한다.
고금면 상정리에서 장보고 대교를 건너면 신지면 송곡리에 이른다.
장보고 대교는 96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7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2017년 11월 개통되었다. 턴키 방식의 입찰로 여러 업체의 설계 경쟁이 있었는데 H형 콘크리트 2주탑 강합성 사장교로 설계한 코오롱글로벌(주) 외 3개사가 시공사로 선정되었다.
무사의 장검 2개를 세운 듯한 H형 주탑은 무장(武將)이자 무역상이기도 하였던 장보고의 역사성과 해양 중심지의 관문적 특성을 표현하며 개방성을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다리의 처음 공사명은 청해대교로, 장보고가 완도에 설치했던 군영(軍營)이자 무역기지였던 청해진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키는 경관콘셉트였다. 그러나 이후 국가지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장보고 대교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장보고 대교는, 2013년 개통한 이순신 대교와 김대중 대교에 이어 역사적 인물의 이름이 붙은 세 번째 교량이 되었다.
교폭은 14.65m로 왕복 2차로이며 총길이 4,297m 중 해상 교량 구간은 1,305m이다. 주경간교인 사장교의 길이는 400m이고 주탑높이는 91.5m이며 2개의 주탑 사이인 최대경간장은 220m이다.
장보고대교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신지도의 송곡항이다. 최근 전국민을 안타깝게 한 초등학생 일가족의 불행한 사건이 하필 이곳과 연루되어 있어 마음이 무거워진다.
신지도는 원래 지도(智島)라 불렸는데 나주목에 지도(현 신안군 지도읍)라는 지명이 있어 신지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보통 새로울 신(新)을 사용하는데 신지도의 신자는 땔나무 신(薪)이다. 신지도에는 근동에서 제법 높은 상산(325.7m)이 있어서 나무가 많은 섬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었던 것 같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위치한 신지도의 남쪽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한 해양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해양치유의 섬으로 부상하고 있다.
또한, 신지도는 동국진체를 완성한 원교 이광사가 58세에 귀양을 와서 일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장보고 대교를 통해 신지도에 들어온 국도 77호선은 신지도의 최북동지역을 지나 신지대교를 건너 완도로 빠져나간다.
총길이 840m의 신지대교는 우물통 기초에 7개의 경간으로 구성된 강상판 박스 거더교로 최대경간장은 160m이다. 15.5m의 교폭은 세 개의 차로와 한 개의 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완도에서 신지도 방향으로 두 개의 차선이 지나가고 신지도에서 완도 방향에는 하나의 차선과, 철제 분리대로 안전성을 높인 인도가 있다.
시공사인 두산건설(주)이 1997년 10월 25일부터 2005년 12월 31일까지 공사를 하였으며 3천 톤의 해상크레인이 일괄가설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신지대교를 건너 오른쪽에 위치한 완도농공단지에서는 신지대교와 장보고대교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신지대교는 거더교라 사장교나 현수교 등의 형식에 비해 디자인적인 요소는 부족하게 느껴진다.
신지대교를 건너 완도군의 마지막 여정 완도로 들어선다.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넓은 섬, 완도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가장 남쪽 지방인 완도군의 중심섬이다. 전복 등 해산물 먹거리가 유명하고 장보고 유적지, 장보고 동상, 청해포구 촬영지, 완도 수목원, 완도 타워, 정도리 구계등, 해조류 센터 등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완도군청, 버스터미널, 완도항 등 편의시설은 주로 동남부 지역에 있다.
이곳에는 야간 조명이 화려한 해조류 센터가 완도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인 완도의 남쪽 해안에는 갯돌해변으로 유명한 정도리 구계등 해변이 있다. 800m, 폭 200m의 갯돌해변으로 명승 제3호이다.
장보고 유적지는 고금도가 보이는 동쪽 해안에 있다. 청해진의 주요 근거지였던 장도(將島)를 중심으로 장보고 기념관, 동상, 공원 등이 인접해 있다. 장도의 유적지가 잘 관리되어 있고, 걸어서 들어갈 수 있도록 연도교가 놓여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완도는 1968년 12월 완도군의 첫 연륙교인 완도교가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로 이어져 육지로 탈바꿈하였다. 엄밀하게 말하면 남창교 건설로 이미 육지화된 달도를 완도와 이은 다리가 완도교이다.
해남군과 완도 사이에는 있는 작은 섬 달도는 남창교로 연결되어 있는데 남창교는 3차에 걸쳐 별도 건설되었다. 1차는 1927년, 2차는 1965년, 3차는 1999년에 준공되어 국도 제13번, 77번을 연결하며 완도와 해남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완도교는 비록 1차로의 교량이었으나 섬으로 고립되어 배로 30분을 가야했던 완도를 남해안 일대의 수륙교통 중심지로 발전하도록 기여하였다. 교통량의 증가로 기존 완도교 옆에 2차로의 연육교인 (구)완도대교가 1985년 준공하였다.
현재의 완도대교는 (구)완도대교와 구분하기 위해 공사명이 신완도대교였으나 2012년 (구)완도대교를 철거하면서 완도대교가 공식명칭이 되었다.
2012년 3월 완도대교의 개통으로 완도교와 (구)완도대교가 철거되었는데 당시 옛날 다리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으나 유지 보수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로 결국 철거되었다.
2003년 6월 30일부터 2012년 12월 7일까지 공사가 이루어졌던 완도대교는 500억 원의 예산으로 삼성물산(주)이 시공하였다.
총교량길이 767m의 완도대교는 500m의 사장교와 180m의 거더교, 87m의 라멘교로 구성되어 있다. 완도대교는 사장교의 경간구성이 70m+90m+200m+140m로 비대칭이며 최대 경간장은 200m이다. 비대칭의 경간구성은 청해진의 무역선이 바다로 나아가듯 운동감을 주는 효과로 힘차게 전진하는 완도의 미래를 상징한다. 75m 높이로 솟은 A형의 1주탑은 해상왕 장보고의 투구를 형상화하였으며 하부교각은 완도의 군화인 동백꽃을 형상화한 것이다.
교폭은 25.9m로 중앙분리대가 있는 왕복 4차로에 양측으로 인도를 놓아 철제 분리대로 구분하였다. 왕복 4차로로 통행이 원활해지면서 기존 이동 소요시간이 20분 이상 단축되었다고 한다.
대교 밑으로는 청해진 일주도로가 횡단하고 있고 분수대와 넓은 선착장 등이 조성되어 시원한 다리 그늘을 쉼터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노을대교(가칭)가 이름에 걸맞는 관광과 휴식의 교량이 되려면 대교 자체의 미관도 중요하겠지만, 사람들이 편안하게 걷거나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하고 쉼터도 마련되어야 할 터인데 8km가 넘는 긴 교량에 인도가 설치된 사례를 아직 만나지 못했다. 자동차의 높은 속력과 굉음으로 위협적인 다리가 아닌, 사람을 위한 다리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 라이더 인구가 많아진 요즘 추세를 반영하여 자전거 속도로 움직여도 좋을 노을대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사진 유석영, 조창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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