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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기술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다리, 양화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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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각의 조화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양화대교 아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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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07일(수) 16:03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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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주)고창신문 | | 국내기술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다리, 양화대교
교각의 조화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양화대교 아래 풍경
① 경남 마창대교
② 경남 창선·삼천포대교
③ 전남 김대중대교·칠산대교·영광대교
④ 전남 돌산대교·화태대교
⑤ 전남 백야대교·화양조발대교·둔병대교
⑥ 전남 팔영대교·적금대교·낭도대교
⑦ 전남 고금대교·장보고대교·신지대교·완도대교
⑧ 충남 보령해저터널·원산안면대교·안면대교
⑨ 경기 남양대교· 서울 양화대교
국도77호선 고창 해리-부안 변산 도로건설공사(가칭 노을대교)는 2030년 준공예정으로 그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은 8년 후의 일이지만, 누가 어떤 형태의 다리를 건설할 것인가 등 기본 설계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올해 안에 결정되어야 한다.
노을대교는 지난 7월 마감된 1차 발주공고 결과 금광기업 컨소시엄의 단독 입찰로 자동 유찰되면서 9월 6일 나라장터에 두 번째 입찰공고가 게시되었다.
횟수로는 두 번째지만, 1차 유찰 이후 설계비 125억6천만 원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신규 입찰로 구분되어, 이번에 또 유찰된다 해도 기회는 남아있다. 만약 2회 이상 유찰된다면 수의계약 조건이 되기 때문에 고창군으로서는 좋을 리 없는 진행이다. 판매자들이 경쟁을 해야 소비자가 좋은 물건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듯, 경쟁입찰의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다리 건설에도 더 좋은 변화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산청 주무관에 따르면 현재까지 금광기업 이외의 타 기업의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찰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에 또다시 유찰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2회 이상 입찰공고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한다.
첫 발주공고 때는 건설자재비 상승 등으로 여건이 매우 좋지 않아 결국 유찰되었지만, 최근 철근 가격이 정상화되는 등 긍정적인 신호도 있으니 이번에는 경쟁입찰의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현재까지의 계획에 따르면 노을대교는 폭 10m, 2차선으로 해상교량길이만 6,968m(총 연장 8.86km)이다. 그중 310m의 특수교량이 건설되는데 특수교량 310m 구간은 부안군 해양경찰서의 경비선 통행을 위한 것으로 수심이 깊은 부안군 쪽에 설치된다. 고창군 쪽에서 보면 대교 자체의 미관에 대해서는 기대할 바가 없을 것 같다. 교각 위에 평평한 상판만 놓인 거더교가 보일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거더교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다리의 모습이다. 수평으로 놓인 상판을 기둥이 받치는 구조로 가장 간단한 교량 형식이다. 스틸로 만들어지면 강(鋼)거더교, 콘크리트로 만들어지면 콘크리트 거더교이다. 다리의 일부가 파괴되더라도 복구가 용이하며 가장 경제적인 교량이라는 장점이 있다. 미관을 고려하지 않은 가장 실용적인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회차의 취재 지역인 한강의 대교 건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실용성에 더하여 도시 미관까지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에 무려 100년이 걸렸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투자효율이 뒷받침되지 않는 노을대교에 미관까지 바란다는 것이 무리일 수밖에 없다.
투자효율을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이겠으나, 다시 국토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단계로 되돌아가지 않는 한, 정치적 영향력이 작용할 여지도 현재로서는 없다. 결국 노을대교는 가장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수준에서 건설될 것이라는 예상이 합당할 것이다.
또한, 노을대교는 교량길이만 7km에 이르기 때문에 자전거도로나 인도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인 것 같다. 라이더(Rider)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를 반영하여 안전한 자전거 도로가 확보된다면, 석양의 노을빛 받으며 자전거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상상이 실현될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현실은 상상만큼 녹록지 않다. 교량의 폭이 1m 늘어나려면 8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추가되어야 하는데 투자효율(B/C benefit-cost ratio)이 뒷받침되기 어렵다는 익산청 주무관의 설명이다. 사람 통행을 허용하기에 너무 긴 길이라는 점도 문제이다. 7km의 길이는 사람의 걸음으로 대략 만 보(步)에 해당한다. 두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는 긴 길이이고 ‘사람이 걷기에 얼마나 접근성이 좋은가?’ ‘주변 환경이 쾌적한가?’ 등 충족되어야 할 여건이 만만치 않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 유현준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평균 속도는 시속 4km로 그 이상의 속도에 대해서는 위협감을 느낀다고 한다. 만약 차와 사람이 같이 통행하도록 하고 싶다면 차도보다 3m 이상 낮게 인도를 만들어 분리해야 위협감을 덜 느끼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관리하기 어려운 해상(海上)의 특성상 사고 위험성이 높다는 점 등은, 낭만적인 상상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지 않아서 사람이나 자전거 통행이 위법한 일이 아니게 된다 해도, 차량통행이 뜸한 한적한 도로가 아닌 이상, 자동차의 굉음이 끊임없이 귀를 스치는 상황이라면 사람이나 자전거가 평화롭게 다리를 건너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한강에 수많은 다리가 놓였듯, 미래의 어느 날, 2차선의 노을대교 만으로 부족하다는 요구가 커지고 인도, 자전거 도로 뿐 아니라 4차선을 확장한다 해도 투자효율이 뒷받침된다면 제2, 제3의 노을대교 건설도 가능해질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런 미래를 상상하며 고창군에 좀 더 도움이 되는 노을대교가 건설되기를 기원한다.
「노을대교(가칭) 미래 100년」 기획취재가 어느덧 최종회를 맞았다.
심미적으로나 실용적으로 가치있는 노을대교의 역사적인 건설에 대한 바람을 담고 시작된 노을대교 기획취재는 총9회의 마지막 여정으로 경기도 남영대교와 서울 양화대교를 취재하였다.
경기도 평택에 들어서면서 38번 국도에서 갈라진 77호 선 국도는 남양만 위에 남양대교로 길을 내어 남양호를 건넌다.
경기도 평택시와 화성시 사이를 흘러 아산만으로 나가는 발안천은 1974년 남양방조제 준공으로 아산만과 분리되었다. 남양호는 남양방조제로 바다와 분리되어 호수가 된 것이다. 남양호를 가로질러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와 화성시 우정읍 이화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남양대교이다. 2005년 12월 개통된 다리로 총연장은 1,230m 교폭은 21m이며 4차선이다. 다리의 형태는 평평한 거더교로, 아름다운 경관과는 거리가 멀고, 인접한 국가산업단지 물류유통이 주 이용 목적이다. 호수 위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큰 배가 다닐 일도 없어서 특수교량으로 설계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남양대교는 전형적인 산업대교로 대형 트럭들이 달리는 굉음과 진동이 끊이지 않는다.
서울로 들어서며 77호선 국도는 6호선 국도와 합쳐져 양화대교에 이른다.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폭이 들쭉날쭉이던 한강은, 제24회 서울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1982년부터 4년간에 걸쳐 이루어진 한강종합개발사업을 거치며 전체 구간의 폭이 1km 남짓으로 조정되었다. 한강에 걸쳐진 많은 다리의 길이가 비슷비슷한 이유이다.
1900년 최초의 근대적 다리인 한강철교가 준공된 이후 현재 마지막 다리인 월드컵 대교까지 한강에 걸쳐진 다리는 총 32개이다. 그중 철교는 4개이고 반포대교는 잠수교의 지붕처럼 하나로 겹쳐져 하나로 취급되기도 한다.
1965년 제2한강교라는 이름으로 개통된 양화대교는 국내 기술진에 의해 세워진 최초의 다리이다. 양화대교의 건설로 남쪽 구역인 영등포구 양평동 일대와 북쪽 구역인 마포구 합정동 일대가 개발되어 크게 변화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처음 개통할 당시 4차로였지만, 1979년 상류 쪽에 새로운 다리가 착공되어 1982년 2월에 신교가 개통함으로써 구교와 신교를 합쳐 모두 8차로가 되었고 같은 해 9월 양화대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양화대교라는 명칭은 다리 인근의 주요 나루터였던 양화진에서 유래되었다. 1996년에는 구교 보강 공사가 이루어져 2000년 6월 재개통하였고 2000년에는 신교 보강공사가 시작되어 2002년 4월 완공되었다. 2006년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으로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이는 양화대교의 모습을 크게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배가 통과할 수 있도록 특수교량을 설치하는 공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2010년 착공된 공사는 교량 중간 교각 2개를 철거하고 112m에 특수교량인 강재(鋼材) 아치교를 설치하는 공사로 2012년 10월 완성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박원순 시장 당선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예산 삭감 등으로 7개월간 방치되는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양화대교는, 기존 도로를 ㄷ자로 우회처리하고 기존 교량 철거 및 하부보강 공사와 아치교를 설치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고 정치적인 이해관계까지 맞물려, 길이 112m의 아치교 구간이 개통되는데 무려 2년이 걸렸다.
양화대교는 왕복 8차로에 양옆으로 철제로 분리된 인도가 있고 한때는 다리 중간에 카페도 운영되었다. 지금은 코로나 여파때문인지 방치된 상태여서 관리의 손길이 필요해 보인다.
양화대교는 한강의 섬 중 하나인 선유도를 거쳐 간다. 군산시 옥도면의 선유도와 한자까지 같아 두 섬이 모두 신선이 노닌다는 뜻의 선유도(仙遊島)이다.
한때(1978년~2000년) 서울 서남부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장이 있었는데 이후 폐쇄되어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지금은 편안하고 쾌적한 공원으로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어 사시사철 사람들로 북적인다.
선유도공원은 차량이나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양화한강공원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인도교를 통해 걸어서 들어가야 하며 양화대교를 건너서 들어간다 하더라도 차량이나 자전거는 들어갈 수 없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양화한강공원에서는 ‘양화대교 밑’이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이다. 양화대교가 지붕이 되어 햇빛이나 비를 막아주고, 그리스의 회랑 건축물을 보듯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우람한 교각들이 인간 문명의 위대함과 기술의 발달을 새삼 느끼게 하며 우리를 압도한다. 다리 아래 특정 위치에서 보면, 수많은 교각들이 조화를 이루며 기하학적 조형미를 보여주어 한 폭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지금까지 20여 개가 넘는 다양한 대교들을 취재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걸린 다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리라는 시설물이 문명의 일부이고 문명은 인간의 필요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
노을대교가 비록 화려하거나 장엄한 미관을 갖추지 못한다 할지라도 사람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77호선 국도는 이제 강변북로에서 자유로로 이어진다. 한강변을 따라 일산, 파주를 거쳐 북으로 올라가다가 임진각역을 지나며 자유로 종점 자유IC에서 1호선 국도와 만나며 끝을 맺는다.
77호 선 국도가 임진강을 건너는 날이 온다면, 섬 아닌 섬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자동차를 타고 아시아와 유럽까지 달리고 싶은 꿈이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글·사진 유석영, 조창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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