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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무장포고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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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7월 11일(화) 16:31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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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무장포고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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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진 윤 식 | ⓒ (주)고창신문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무장포고문」이 2023년 5월 24일 동학농민혁명기록물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으로는 역사적 중요성, 완전성, 희귀성이 있으며, 목록 선정 기준은 국가 기관이나 이에 준하는 기관이 소장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물로 보존 및 관리 대책이 명확한 것을 대상으로 함이라고 하였다.
물론 무장포고문(茂長布告文)뿐만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 185건이 등재되었으며, 우리 고창군과 직접적인 관련 자료는 거의록(擧義錄)과 취의록(聚義錄)도 함께 등재되었다.
이번 동학관련 자료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됨으로서 우리 고창군은 세계유산 7개를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도시에 등극하는 영예를 안게 되었다.
거의록(擧義錄)
거의록은 흥덕현감 윤석진의 협조아래 흥덕의 유생 강영중 박윤화와 고창의 유생 강수중 등이 1894년 9월 수성군을 조직하여 활동한 기록을 모은 책이다. 관계 기록으로 보아 동학농민전쟁이 끝나고 논공(論功)을 할 시기인 을미년 4월에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문은 백낙규가 썼고 이어 이규채가 쓴 거의사실, 강영규 등이 돌린 취의통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밀령, 전령상서, 포고문(무장포고문이 아님) 등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흥덕수성청좌목>과 <고창수성청좌목>에는 각기 소임의 명단을 상세리 기록하고 있다,. 끝에는 <고창수성청제원효로질>이 있는데 각기 등급을 매겨 놓았다. 이것은 군공(軍功)에 따른 기록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농민군과의 전투상황은 기술하지 않고 다만 수성군의 문건들만 모아 놓았을 뿐이다. 그런 속에서도 정읍의 접주 차치구와 그 외 농민군 지도자를 색출 처단한 단편적 내용을 알려주며 또 농민군 지도자였다가 변절한 이봉우가 증산현령이 되고 농민군에게 피해를 보았던 고창의 은수룡이 농민군 토벌에 나왔던 사실 등도 알려준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李離和
취의록(聚義錄)
취의록은 전라도 흥덕 고창의 농민군 토벌을 벌인 수성군의 명단을 적은 기로이다. 앞<거의록>과 같은 수성군 명단을 적었으나 서문등 문건을 수록하지 않고 있다. 다만 끝에 취의통문을 덧붙여 놓아 그 명단의 성격을 알려준다. 이는 <거의록>에 있는 것과 동일하다.
한편 명단은 거의록에 있는 것과 중복되나 이 자료의 수록분이 훨씬 자세하다. 여기에는 흥덕, 고창, 고부 부안면, 부안 건선면 우포, 장성 북이면, 무장 등의 순으로 위에 신분과 성명, 아래 자와 거주지를 기재하였으나 때로 자와 거주지가 누락된 부분도 있다. 이들 명단은 흥덕 고창이 다수를 차지하고 그 외 지역은 부수되고 있다. 특히 전봉준이 태어난 마을로 알려진 고창 덕정면 죽림리에서도 김씨 윤씨 등 12명이 수성군으로 참여한 사실도 알려 준다. 수성군의참여 명단은 거의 망라해서 기록환 자료로서 그 의미가 크고 또 희귀한 자료에 속한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소장본이다. 李離和
무장포고문 필사본(茂長布告文 筆寫本)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함은 그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군신과 부자의 인륜은 세상의 으뜸이로다.”로 시작되는 동학농민혁명 포고문은 음력 1894년 3월 20일 무장현에서 동학농민군이 출정할 때 반포되었던 내용의 첫머리다. 그 전문을 아래에 기록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김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군신(君臣)과 부자(父子)는 가장 큰 인륜으로 꼽는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충직하며, 아비가 자애롭고 아들이 효도를 한 뒤에야 국가를 이루어 끝없는 복록을 불러오게 된다. 지금 우리 임금은 어질고 효성스럽고 자애로우며 지혜롭고 총명하시다. 현량(賢良)하고 정직한 신하가 있어서 잘 보좌해 다스린다면 예전 훌륭한 임금들의 교화와 치적의 날을 꼽아 기다려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신하가 된 자들은 나라에 보답하려는 생각을 아니하고 한갓 작록과 지위를 도둑질하여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아부를 일삼아 충성스런 선비의 간언을 요사스런 말이라 하고 정직한 사람을 비도(匪徒)라 한다. 그리하여 안으로는 나라를 돕는 인재가 없고 바깥으로는 백성을 갈취하는 벼슬아치만이 득실거린다. 인민의 마음은 날로 더욱 비틀어져서 들어와서는 생업을 즐길 수 없고 나와서는 몸을 보존할 대책이 없도다. 학정(虐政)은 날로 더해지고 원성은 줄을 이었다.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구분이 드디어 남김없이 무너져 내렸다. 관자(管子)가 말하길 “사유(예의염치)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곧 망한다"고하였다. 바야흐로 지금의 형세는 예전보다 더욱 심하다. 위로는 공경대부(공경대부)이하, 아래로는 방백수령(방백수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거의 자기 몸을 살찌우고 집을 윤택하게 하는 계책만을 몰두하여 벼슬아치를 뽑는 문을 재물 모으는 길로 만들고, 과거 보는 장소를 사고파는 장터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허다한 재물이나 뇌물이 국고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사사로운 창고를 채운다. 나라에는 쌓인 부채가 쌓여 있는데도 갚으려는 생각은 아니하고 교만과 사치와 음탕과 안일로 나날을 지새워 두려움과 거리낌이 없어서 온 나라는 어육이 되고 만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진실로 수령들의 탐학 때문이다. 어찌 백성들이 곤궁치 않으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근본이 깍이면 나라가 잔약해지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도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계책은 염두에 두지 않고 바깥으로는 고향집을 화려하게 지어 제 살길에만 골몰하면서 녹위만을 도둑질하니 어찌 옳게 되겠는가? 우리 무리는 비록 초야(草野)의 유민(遺民)이나 임금의 토지를 갈아먹고 임금이 주는 옷을 입으면서 망해가는 꼴을 좌시할 수 없어서 온 나라 사람이 마음을 함께하고 억조창생(億兆蒼生)이 의논을 모아 지금 의로운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생사의 맹세로 삼았다.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랄 일이겠으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각자 생업에 편안히 종사하면서 태평성대를 축수하고 모두 임금의 교화를 누리면 천만다행이겠노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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