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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 「무장포고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되다 <2>

2023년 07월 18일(화) 05:39 [(주)고창신문]

 

동학농민혁명 「무장포고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되다 <2>


↑↑ 사)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진 윤 식

ⓒ (주)고창신문

[지난 호에 이어]
밖으로는 서양 세력이 기술과 문명을 앞세워 동양을 위협하며 침략의 기회만 노리고 있고, 안으로는 유교질서의 틀 안에서 반상의 위계질서를 정해 놓고 일반 백성들을 억압해 오면서 권력을 이용해 착취를 일삼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라는 점점 패망의 길로 접어들던 이때, 동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여 사람마다 하느님을 모신(侍天主) 소중한 존재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느님 같이(事人如天)하라는 종교 사상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일(驚天動地)만한 천둥소리로 들려 왔을 것이다. 이러한 종교 사상을 기반으로 억압 받고 학대 받던 민초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동학농민혁명이다.
전봉준, 손화중, 김덕명, 김개만등 농민군 지도부가 모의한 후 무장 땅에서 출정할 때 반포되었다 하여 「무장포고문」으로 불리는 동학농민혁명 포고문은 한문으로 쓰여진 필사본 9종과 일본으로 건너간 일본어판 3종 그리고 오지영의 동학사에 기록된 국·한문 혼용으로 된 창의문 한편이 있다.
1. 수록(隨錄)에는 茂長縣騰上 東學人 布告文(무장현등상 동학인 포고문)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사운연구소간 권5, p157)
2. 동비토록(東匪討錄)에는 東學輩 本邑 布告文 茂長(동학배 본읍 포고문 무장)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6, p.159)
3. 정읍 황토현 기념관에 茂長 東學徒 布告文(무장 동학도 포고문)
(기념재단 기념관 개관도록 p.82~83)
4. 오하기문(梧下記聞)에는 琫準等大會茂長縣 布告民間(봉준등대회 무장현 포고민간)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1, p.52)
5. 취어(聚語)에 茂長東學輩布告文(무장동학배포고문)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2, p.124)
6. 동학문서(東學文書)에는 全羅道東學輩布告文 茂長縣(전라도동학배포고문 무장현)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5, p.136)
7. 나암수록(羅巖隨錄)에는 茂長東徒 布告文 (무장동도 포고문)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2, p.382)
8. 동학사(東學史)에는 倡義文으로,
(오지영의 동학사 대광출판사간 p.119~120)
9. 무장포고문(茂長布告文)
(천도교 중앙총부 1894, 한지, 36.5×21)
10. 오사카매일(大阪每日)에는 東學黨의 檄文(동학당의 격문)
(동학농민전쟁 자료총서 권23, p.195, 동학당이 무장에서 인민에게 알린 檄文은 왼쪽과 같다.)
11. 시사신보(時事新報)에는 東學黨의 檄文(동학당의 격문)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22, p283, 전라도 무장의 동학당이 발표한 격문이라고 한다.)
12. 오사카조일신문(大阪朝日新聞) 東學黨의 檄文(동학당의 격문)
(동학농민전쟁 사료총서 권23, p9, 왼쪽에는 전라도 무장의 동학당이 발표한 檄文이라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1차 무장(茂長)기포 때 수십 매의 포고문이 전국에 배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그 원본은 한 장도 남은 것이 없다. 다만 필사본 9종과 일본신문에 3종이 확인되는 바, 동학사의 창의문을 제외한 모두에는 표현을 달라도 무장(茂長)이란 지명이 반드시 들어가 있다. 1944년 12월경 진기홍 선생이 장성군 서삼면 송규락 선생 댁을 방문, 원본을 확인했던바 ”그 방문(榜文)에 포고문 창의문 따위의 표제도 없고 오지영의 저서에 보이는 갑오년 1월이라는 발표 시기와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의 기명도 없었다. 그는 ‘오지영이 이러한 사실을 알 리가 없다고도 하였다.“(고창의 숨결, 향토사료집3, p.95, 고창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그렇다. 처음 모의할 때는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등 지도부 10여명이 함께 했는데 후일 세 사람만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운동권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며, 필사본 모두에 제목은 달라도 무장(茂長)이라는 지명이 기록됨은 처음부터 제목이 없었다는 반증인 것이다. 다만 무장 지역의 세력이 중심축이였다는 것을 뜻하며 아울러 손화중 대접주의 남접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포고문의 발표는 동학농민혁명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음은 말할 것도 없고 거사의 대의명분을 밝히는 중차대한 행위로서 떳떳함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사적으로도 이만한 격문이 나온 혁명사는 없었다.
또한 이번에 세계기록유산에 대표적으로 등재된 포고문은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소장하고 있는 자료인바 서암(曙菴) 이병종(李秉鐘 1923~2011 원산시 방하산리)선도사께서 수집하여 기증한 자료로 확인되었다.
아울러 여기에서 하나 명백하게 기록해야 할 것은 포고문과 함께 4대명의 12조 군율도 같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4대명의 12조 군율이 부안 백산에서 나온 것으로 인식하고 부안 백산 행사 때 낭독되곤 하였는데 이는 오류이다.
포고문과 4대명의 12조 군율은 문장과 문맥 그리고 실제 행동 강령으로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한 묶음이다. 그동안 잃어버렸던 우리 것을 다시 찾은 것이다.
다른 문화유산들이야 일상적인 삶에서 또는 자연현상 속에서 아름답게 태어난 것이지만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같은 인간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선혈이 낭자한 죽음 위에서 피어난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홍색의 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화의 꽃, 그 검붉은 장미꽃의 색깔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끝>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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