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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동(東)불암을 동(銅)불암으로 바로잡아야

2023년 09월 06일(수) 16:28 [(주)고창신문]

 


선운사 동(東)불암을 동(銅)불암으로 바로잡아야


↑↑ 마애여래좌상 전경

ⓒ (주)고창신문

고창학연구회(이하 연구회, 사료조사위원 오강석)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선운사 마애불로 알려진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의 東을 銅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회는, 1994년 보물로 지정된 이 마애여래좌상이 고려 공민왕 때 면상(面像)에 구리 주물을 씌워 동불이 되었다면서, 이때 눈비를 맞지 않도록 얼굴 위쪽에 청자기와를 올린 보호각을 설치하고 불상아래에 하도솔암(下兜率庵)을 지었으며 동불과 암자를 아울러 속칭 동불암(銅佛庵)이라 불렸다는 것을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도솔암 서쪽 50여 미터 거리에 있는 이 마애여래좌상은 높이 15.7미터 무릎 너비 8.5미터의 국내 최대 마애불상이다. 길가에서 보면 절벽 위쪽에 얼굴이 훤히 보인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손화중 포 무장 동학도들이 이 마애여래불의 복장 비결을 꺼낸 것으로 유명하다. 이 동불은 1648년에 태풍으로 면상에 씌운 구리주물이 떨어져 파괴된 뒤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가 1969년 5월 28일 한 나무꾼이 발견하고 신고하여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했다. 하지만, 신고를 접수한 담당자가 나무꾼이 말하는 동불암의 동(銅)을 음이 같은 동(東)으로 오기하면서 의미가 변질된 동(東)불암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마애여래좌상은 신고 직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94년에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었다. 연구회는 문화재로 등재할 때도 문헌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를 수정하지 못하였다면서, 보물로 지정되는 과정이 허술했다고 지적한다. 즉, 선운사에서 동불암과 관련이 있는 시설은 선운사, 내원궁, 도솔암인데, 동(東)불암이 되려면, 마애여래좌상의 위치가 어느 기준점인가의 동쪽에 있어야 하는데 어느 곳에서도 동(東)이 아니라면서 당시에 『송사지』와 『전선원무장읍지』 등 여러 문헌에 동불암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었으므로 문헌조사를 시행했다면 어렵지 않게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 송사지 표지와 동불암 내용

ⓒ (주)고창신문


연구회는,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문장가인 이규보의 『남행일월기(南行日月記)』에 마애여래좌상이 문헌상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 기록으로 마애여래좌상은 1200년 이전에 만들어졌고 1200년에는 동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마애여래좌상이 동불(銅佛)이 된 시기를 밝힌 것은 이재 황윤석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후기 실학자 강후진의 『송사지(松沙誌)』라고 말한다. 또한, 불상의 어느 부위에 구리 주물을 씌웠는지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선원무장지(全鮮元茂長誌)』 『무장현읍지(茂長縣邑誌)』 『무장읍지(茂長邑誌)』 규장각 발행 『전라도읍지(全羅道邑誌)』 권9의 전선무장지(全鮮茂長誌) 등 여러 문헌에 수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기록에 의하면 마애여래좌상을 동불이라 부른 이유는 불상의 ‘면상에 구리주물을 씌웠기 때문’이며 그 구리주물은 인조26년(1648년) 태풍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이다.
연구회는 마애여래좌상의 얼굴 부위에 구리 주물을 씌운 직접 증거를 찾기 위해 지난 7월 3회에 걸쳐 정밀 드론촬영을 실시했다며 분석 결과 마애여래좌상의 면상에 구리주물을 씌웠다는 기록의 신빙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다.

↑↑ 열굴에 뚫린 구멍들

ⓒ (주)고창신문

첫째, 얼굴 부위에 집중된 20개의 구멍들이 가림막의 나무기둥 구멍에 비해 크기가 현저히 작아 구리 주물을 고정시키기 위한 철제를 꽂았던 것으로 보이며, 문화재 보수 전문가들도 현재 마애여래좌상의 얼굴 왼쪽 눈 옆에 꽂혀있는 두 개의 철편 또한 그런 용도로 사용되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의견이라는 점이다.
둘째, 1995년 부여문화재연구소의 실측조사 때 발견된 쇠못과 쇳덩이들이 크기로 보아 안면부의 구멍들과 관련성이 깊다고 판단되며
셋째, 안면부의 구멍들이 좌우 대칭적으로 뚫려 있어 동판의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한 안배로 보인다는 점과
넷째, 얼굴 부위 암석 변색 부분이 구리 부착으로 인한 산화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어 추후 관련 기관에 조사를 의뢰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실체적 증거로 꼽았다.
연구회는 이를 최선주 교수(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전 국립경주박물관 관장)에게 의뢰하였는데, 문헌 자료 및 마애여래좌상의 안면 부분 사진을 검토한 최선주 교수는 “고려말 도솔암 두건형 금동지장보살이 조성된 후에 그 영향을 받아 마애불 얼굴 부분에 청동주물을 만들어 걸었던 듯하다”며 “특히 안면의 바위 일부는 구리주물의 영향으로 변색된 것으로 보여 정밀조사가 필요하다.”는 견해와 더불어 “구리 주물을 안면에 부착한 방법과 이전 조사에서 수거된 철정 및 철 뭉치의 용도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조사가 필요하며, 보물의 관리 주체인 지자체에서 전문 연구자들의 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정확한 고증을 거쳐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유석영 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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