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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왜 개갑순교성지가 있을까?

2023년 09월 13일(수) 16:56 [(주)고창신문]

 


들판에 왜 개갑순교성지가 있을까?


ⓒ (주)고창신문

석교리에 개갑 순교성지가 있다. 승용차로 지나치면서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여느 시골 풍경과 같은 엉뚱한 곳에 웬 순교성지인가? 또 가까운 곳에 동학농민혁명 기포지도 생뚱맞다고 여겼다. 궁금증 판도라 상자를 열고 싶어 성지에 갔었다. 큰 돌에 개갑순교성지라고 새겨 놓았다. 성물과 십자가의 길, 복자 최여겸(마티아) 참수터, 외양간 경당도 둘러보았다. 논과 밭이 있는 구릉지에 있어 왜 여기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매우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비문에 적힌 최여겸 순교일은 음력 7월 9일이다. 개갑은 옛날 장터 이름이다. 바로 성지가 개갑장 중심지였다는 생각이 스쳤다. 주소는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다. 장날을 유추해 보았다. 인근의 법성장과 무장 장날은 5·10장이고 고창 장날은 3·8장이니, 그 사이 4·9장이었을 거로 본다.
성지를 나와 석교 마을에 갔다. 길가에 팽나무 노거수가 있는 걸로 보아 오래된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은 “이곳은 백여 년 전까지 장터였고요. 선착장인 석교 창과 석교 나루가 있어 배가 드나들었어요. 바다와 접해 창이 있어 창촌마을이고, 장동마을과 연결하는 돌로 만든 징검다리가 있어서 석교 마을입니다.” 아 저 앞에 펼쳐진 논이 바다였구나. 장날에는 무장 고창 흥덕 사람은 걸어서 오고 법성이나 흥농, 섬마을 사람은 범선을 타고 왔겠구나. 개갑 장은 농산물뿐만 아니라 수산물이 풍부한 장이었겠다. 입소문을 퍼트리는 의사소통의 큰 장이었겠다. 옛날 섬사람들이 범선을 타고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도 열렸단다. 그 증거인지 천주교 성지에 ‘외양간 경당’이 있다.
현재 성지 주변이 장터였다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개갑 장터는 종교의 자유와 만민평등을 주창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개갑 장날에 서학으로 불리던 천주교 신자인 최여겸 마티아를 참수했다. 장을 보러 온 백성들에게 사학邪學(현재 천주교)에 홀리지 말라고 경고했던 거다. 세월은 흘러 1894년에는 개갑 장 후미진 곳에서 동학농민 혁명을 기포했다. 고부 현감 조병갑의 폭정에 항거하기 위해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이 동학당의 교도와 농민들이 함께 혁명을 모의했다.
최여겸 마티아는 무장현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충청도 한산으로 장가들었다. 처가살이하면서 진산의 윤지충으로부터 천주교에 입문했다. 이어서 내포의 사도 이존창을 만나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고향인 고창으로 내려와서 조카를 비롯하여 28인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정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순조 원년에 신유박해가 시작되었다. 처가에서 숨어 지내던 최여겸은 배교자에 의해 붙잡혀 전주 감영으로 이감되었다. 나라님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해읍정명법에 따라 복음을 전한 개갑장터에서 참수당했다. 그날이 1801년 7월 9일이다. 최여겸 참수형 선고문은 전해온다. ‘처음에는 윤지충을 만나 사학邪學을 접했고, 이존창을 따라다니며 사학을 독실하게 믿었다. 선남선녀를 터무니없는 말로 그릇되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끝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르치기게 했다.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겠다.’

ⓒ (주)고창신문

고창군은 개갑 장터 순교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2004년 향토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했다. 고창군은 전주교구 고창 본당과 함께 가톨릭 성지로 조성하였다. 2009년부터 순교 현양탑과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한 후 2013년 9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집례로 개갑 최여겸 마티아 순교성지 축복식을 했다. 이듬해 8월 16일 최여겸 마티아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개갑 장터가 왜 사라졌을까. 그 원인을 찾아보았다. 어떤 이는 일본이 미워해서 개갑장을 폐쇄했다고 하지만 그 원인은 분명 간척사업이다. 1910년 국권피탈 후, 조선총독부는 전국에 걸쳐 5대 간척사업을 시행했다. 그중 하나가 가와사키의 간척사업, 전남 방조제 축조다. 1924년 6월부터 약 1년에 걸쳐 법성면 진내리와 칠곡리 사이에 580m의 방조제를 막아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했다. 조기 떼가 몰려다녔던 법성리 검산마을 앞바다는 하루아침에 논이 되어버렸다. 바다가 농경지로 바뀌면서 어시장이 사라진 개갑 장은 자연스럽게 소멸된 거다. 이 글을 쓰면서 법성포 숲정이를 지나 영광 대교를 향해 달렸던 방조제가 전남 방조제라는 사실에 놀랐다.
공음면 석교리가 왜 동학과 서학의 성지인가. 의문이 풀렸다. 뜬금없음이 결코 아니었다. 신유박해의 현장, 최여겸 순교성지가 있고 동학운동의 기포지가 있는 것은 바로 개갑 장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내 유일의 서학과 동학의 성지로 거듭난 거다.
석교창과 개갑장은 사라졌지만 동·서학 성지로의 복원은 잘한 거다. 하나 더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개갑 장과 석교 창, 석교 나루 등의 위치를 찾아 복원하면 좋겠으나 그게 어렵다면 표지석이라도 만들어 스토리텔링을 하면 좋겠다. 더불어 전주교구와 합심하여 방조제 축조로 인해 생긴 두암저수지 주변에 12 사도 순례길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임동욱 시민기자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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