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파독 광부와 간호사가 60주년을 맞아 고국 방문을 하자 뉴스에선 방문 소식을 전하며 그들의 외화 종잣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며 극찬을 하였다. 내년이면 월남전 한국군 파병도 60주년이 된다. 월남전 한국군 파병은 미국의 요청으로 1964년 태권도 교관단 10명과 제 7 후송병원 130명을 시작으로 1967년 8월로 끝이 났지만 파병된 한군군은 1973년도에 마지막 부대가 철수를 하였다. 8년 8개월 간 325,517명이 월남전에 참전하였고 사망자는 5,099명에 이른다.
1964년대 초 미국의 군사적 원조와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박정희 정부가 실시한 한군군 파병으로 한국인 1인당 실질 국민 총소득은 파병 직전보다 한국군 철수시 2.52배가 증가하고 외환보유액 또한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한국군 파병으로 벌어들인 외화와 미국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한국의 경제력 육성에 크게 활용되었고 국토개발사업에 투입되었다. 고창에는 월남참전용사 전라북도 고창군지회가 있다. 현재 회원수는 291명이며 이 중 고엽제 피해자는 111명이다.
본지에서는 이명희 고장군 지회장과 김종석 총무를 만나 월남전 파병과 월남참전용사 전라북도 고창군지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임형순 지회장>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들은 1년마다 바뀌었다. 나는 1966년도에 참전하였다. 한번 전투에 나가면 35키로 군장을 매고 보름동안 작전을 하였는데 갈아 입을 옷도 없고 세수도 제대로 못할 뿐더러 마실 물이 부족해서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도 먹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만 나라에서 월남전에 나가라고 하니 가야만 했다. 한국군 파병 막바지에는 자원해서 가기도 하였지만 그전에는 정부에서 파병 갈 부대를 지정하여 보냈다. 죽을 지도 모르지만 나라에서 부르니 갔다. 혹자는 월남 여인들과의 로맨스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낮에는 민간인이었던 사람이 밤에는 베트콩이 되어 한국군을 죽이러 온다. 로맨스를 생각할 겨를도 없고 상황도 안된다. 시내에 배치된 행정요원들이나 한국에서 일하러 온 민간인들은 월남 여인들을 사귀는 경우도 있겠으나 우리 전투요원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종석 총무> 밤잠도 못자고 베트콩을 잡기 위해 밤새도록 조명탄을 터트리며 박격포를 쏘다가 한쪽 귀가 먹었다. 적군이래도 사람이 죽는 것은 보기가 힘들었다. 밤새 전투를 하고 날이 새어 나가보면 적군의 온몸이 벌집이 되어 있어 사람이 죽었는지 개가 죽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자들은 성노리개로 전략하고 적군들은 시체들을 그냥 거리에 널어 놨다. 전쟁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월남전 파병 당시 미국과의 고용계약서에는 500~600불을 준다고 기재되어 있었으나 실제 병장이 받는 월급은 54불, 57불이었다. 나머지는 정부가 다 가져갔다. 그당시 한국군의 병장 월급은 2,000원이었고 76년도의 공무원 월급은 32,000원이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뿐 아니라 월남 파병 군인들도 한국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우고 목숨까지 바쳤지만 참전수당으로 39만원을 받고 의료혜택을 받는 것 외에 별다른 보상이 없다. 참전수당은 처음 7만원에서 시작하여 1년에 만원씩 오르다 문재인 대통령 때 십만원 올라서 현재에 이르러 겨우 39만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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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순 지회장> 이명박 정부에서야 유공자증을 만들어 줘서 그 때 보훈단체가 되고 호국원을 만들어 주었다. 귀국해서 돌아가신 분이 호국원에 가는데 귀국한 전우들 중 현재 절반만 살아 있다. 보훈보상대상자 9계층 중 유족에게 수당이 승계되지 않는 계층은 참전유공자와 고엽제 후유증 환자의 유족뿐이며 다른 유공자들과 비교해 볼 때 열남전 참전자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 그리고 군에서 월남참전용사 고창군지회에 주는 운영비와 보조비가 너무나 적다. 최저 금액을 받으니 다 함께 밥 한끼 못 먹는다.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자체와 정부에서 관심을 좀 가져 주면 좋겠다.
이미정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