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멍’ 때리는 시간을 즐긴다. 2층에서 나만의 프레임으로 하전리 갯벌과 내변산을 펼쳐놓고 바라본다. 하늘에서 뭔가 덩치 큰 새가 집을 향해 날아왔다. 새의 색깔은 검다. 날개를 펴니 양 끝단이 갈기진 모양이다. 저것은 분명 독수리가 아닌가. 곧장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건물 뒤편으로 옮겨 산기슭을 샅샅이 훑었다. 덩치 큰 새가 자세를 잡느라 날개를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내 집에서 겨울철 진객, 독수리를 만나다니. 독수리를 직접 보고 촬영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일순간 어딘가에 녀석의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독수리 무리를 보고픈 마음은 마구 방망이질해댔다. 좀처럼 설레는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설렘은 나를 엄동의 눈밭으로 이끌었다. 카메라 가방을 챙기고서 무작정 진객의 자태를 찾아 나섰다. 차량으로 부안면 들녘으로 눈길을 달렸다.
후포 못 미쳐서 차창 밖으로 하늘을 나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다. 이 근처에 독수리가 있겠다는 생각에 둑길에 차를 세우고 조심스레 천변을 걸었다. 눈길이라서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었다. 100여 m쯤 갔더니 갈곡천 하구에서 독수리를 발견했다. 물길 옆 둔치에 3마리와 4마리가 모여 있었고 건너편 수직 벽이 있는 길가에 8마리가 보였다. 3곳에서 모두 15마리다.
발걸음 소리를 내며 다가가도 독수리들은 날지 않고 모두 딴전만 피웠다. 마치 독수리가 나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자리를 옮겨가면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독수리는 가끔 고개 돌려 응시할 뿐이었다. 몸이 가려운지 빈대나 이가 있는 건지, 부리로 목 부위를 조의다가 반복해서 주변 살폈다. 내가 소리를 질러봐도 날지 않았다. 독수리의 비상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탐조를 마치고 차로 이동하는데 갈대밭 둔치에서 또 다른 한 마리 독수리를 보았다. 이 독수리는 나와 너무 가깝다 싶었는지 서너 번 날갯짓하고서 약간 비켜 앉았다.
독수리에 대한 기억이 스쳤다. 네팔 안나푸르나 등반하면서 비행체를 보았다. 몽골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독수리 사냥을 흉내 내면서 사진도 찍었다. 국내에서는 TV를 통해 독수리가 철원평야나 경남 고성군에 무리 지어 도래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사전에서 ‘독수리는 몸길이는 100~150cm 정도이며 대개 암갈색 깃털을 가지고 있다. 암벽이나 나무 위에 나뭇가지로 둥지를 틀고 산다. 독수리는 스페인에서 티베트, 몽골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중국 본토의 남부지역이나 한국에서 월동한다. 독수리는 천연기념물 제243호이다.’
언젠가는 철원평야에 가서 보고 싶었던 독수리 무리를 오늘 내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있다. 분명 독수리 탐조는 놀라운 선물이다. 심장이 쫄깃한 기분이랄까. 가슴 떨리며 임을 만난 느낌이랄까.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 고정하고 독수리 표정 하나하나를 담고 담았다. 이 녀석들은 내몽고에서 날아온 녀석들인지, 티베트 조장 터에서 온 녀석들인지 모른다. 철원평야를 거쳐 남녘으로 온 것인지. 곧바로 고창 람사르 습지 명성을 듣고 고창 땅으로 찾아온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어쨌든지 독수리 17마리와 직접 눈 맞춤을 하였으니 운수대통한 날이다.
독수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세 가지다. 첫째 2막의 생을 산다는 것이다. 독수리 수명은 칠·팔십 년이라고 한다. 사십여 년 된 독수리는 부리와 발톱이 굽고 굽어 안으로 옥아진다. 이런 경우 먹이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어서 죽느냐 사느냐 갈림길에 선다. 운명의 순간 독수리는 산 정상에서 부리를 바위에 부딪혀 깨뜨려야만 한다. 주린 배 계속 움켜쥐고 새로운 부리가 나오거든 그 부리로 이제는 발톱을 뽑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새로운 부리와 새 발톱이 나온 개체는 다시 하늘 높이 비상을 하며 제2의 생을 구가하게 된다. 우리 삶에서 정년 후 인생 이모작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다음은 세상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바로 응시하는 관觀이다. 관은 우리의 삶에서 통찰력과 같은 말이다. 세 번째는 뼛속까지 비운다는 것이다. 그 가벼움으로 때가 되면 이역만리를 한달음에 날아오고 또다시 귀소한다는 것이다.
독수리의 이모작의 생, 관, 비움은 인간의 삶에서 노후 대비, 통찰력, 하심처럼 그대로 비교되는 것 같아 진객에 대해 연민과 동질감을 느낀다.
한겨울 눈밭에서 겨울철 진객을 만나 가슴 설레는 호사를 누렸다.
임동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