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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새롭게 찾은 제2의 고향, 고창군

2024년 03월 13일(수) 11:18 [(주)고창신문]

 

인터뷰 - 오랜 타국생활 끝에 고창에 정착한 사람들


노년에 새롭게 찾은 제2의 고향, 고창군


ⓒ (주)고창신문

모국어를 사용하는 익숙한 환경을 떠나, 말도 설고 자연마저 생소한 이국땅에서 수십년 살다가 돌아와 고창을 고향 삼아 정착한 사람들이 있다.
한국을 떠나 47년간 캐나다에서 생활하던 김만기(76), 김명숙(71) 부부는 작년 12월 고창읍 석정 실버타운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두 달 지내다보니 같은 아파트에, 외국생활을 오래 하다가 고창으로 삶터를 옮긴 사람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지금은 친구처럼 가족처럼 서로를 의지하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김만기 씨 부부의 인터뷰 도중, 미국에서 34년을 살다 온 윤석영(69), 강정숙(69) 부부가 합류하면서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인터뷰를, 대화 순서를 살려 화자(話者: 편의상 김만기 씨는 ‘김’, 김명숙 씨는 ‘명’, 윤석영 씨는 ‘윤’, 강정숙 씨는 ‘강’)별로 정리하였다.

김:1977년부터 캐나다 이민생활을 시작하여 47년이 지나는 동안 작년에 세 번째로 한국에 왔는데, 한국이 너무 많이 변해 깜짝 놀랐다. 캐나다 공무원은 정년이 없지만, 우체국에 오래 근무하여 ‘이제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년 3월에 75세로 퇴직하였다. 아내는 한국에 들어가서 살자고 했지만, 딸 아들들, 손주들이 다 캐나다에 살고 있어서, 처음에는 캐나다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명:그 부분에서 서로 의견이 달라, 캐나다를 떠나기 싫다는 남편 마음을 돌리려고, 한국에 들어가서 살면 좋은 점과 나쁜 점 리스트를 적어서 좋은 점에 훨씬 많다고 열심히 설득하기도 했고, 정 안되면 서로 헤어져 살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한국에 와서 6개월만 살아보고 그때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포기하겠다고 제안을 하여 타협점을 찾았다.
김:처음에는 강원도 바닷가에서 한 달을 살았는데 도시가 지저분했고, 비린내도 심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람들이 너무 불친절하여 힘들었다. 식당을 들어가서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하거나 시장에서 사람을 밀치고 다니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그후, 고창 석정 힐링카운티에서 한 달살이를 하였는데, 동네가 너무 깔끔하고 예뻐서 반했고, 사람들이 친절하여 좋았고, 기반 시설들이 잘 구비되어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마침 석정 실버타운에 아파트가 나와 아내가 ‘이때다’ 싶었는지 계약을 하는 바람에 눌러앉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 만족하며 살고 있다.
명:동생이 담양에 살고 있어서 가깝기도 했거니와 처음 고창에 들어오자마자 아기자기하고 깔끔한 이미지에 반했다. 특히 사람들이 어찌나 친절한지 기계적으로 업무만 처리하는 외국의 관공서와는 확연히 다른 친절함과 세심함을 느꼈다. 이 자리를 빌어 김은미 팀장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처음 만난 택시기사도 구수한 사투리로 친절하게 안내를 잘해주었다.
김:요즘엔 군립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데 배드민턴 지도를 해주는 정문창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너무 잘 챙겨주어 참 감사하다.
윤:김만기 형님과는 산책길에서 만나 이제는 서로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산책길에서 길을 잃었는데 형님이 너무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같이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하다보니 서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아서 마음이 잘 통했다. 우리 부부는 1989년에 한국을 떠나 미국 오리건(Oregon) 주에서 살다가 작년 11월에 고창에 정착했다. 미국에서 34년을 살았어도 항상 이방인같고 정서적인 뿌리를 내리기 힘들었다.
강:오랜 외국생활에서도 모국어는 잊지 않지만, 커서 배운 영어는 한계가 있었다.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해도 깊이 소통하기는 어렵다보니 외로움이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열심히 살았지만, 이제 아들딸이 다 독립하고 일을 놓을 나이가 되다보니 ‘결국, 우리가 아이들에게 짐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에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창에 와서 그동안 못했던 것들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노후에는 먹는 것도 중요한데, 비로소 음식도 입맛에 맞고 미국생활보다 생활비도 훨씬 적게 드니 일석삼조다.
김:70년대에 캐나다에 가서 3일 일했더니 한국에서 받던 한 달 월급만큼 나왔다. 그때는 금방 부자가 되는 것 같았는데 생활비도 그만큼 많이 든다는 것을 몰랐다. 또,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무엇을 하려 하든 한 시간 이상씩 운전해서 나가야 하는 일이 다반사인데, 고창에서는 집 앞에 음식점도 있고 마트도 있고 병원이며 온천, 체육시설, 산책길, 등산로 등등이 다 있어서 너무 편리하고 외국에 비하면 비용도 저렴하여 만족도가 높다.캐나다를 떠날 때만 하더라도 아이들 생각에 어떻게 살까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고창에서 살다보니 놀기에 바빠서 아이들 생각도 안난다.
강:처음 고창에 왔을 때 버스터미널은 아쉬웠다. 고창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는 터미널이 너무 열악하고 노후화되었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터미널 신축 계획이 있다는 것을 후에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빨리 진행되기를 바란다.
명: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보도블록이 꺼져있는 바람에 다친 경험이 있다.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다치거나 불편하지 않도록 좀더 세심하고 신속한 처리가 이루어진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김:앞으로 고창군민으로서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나름의 역할을 하고 싶다. 특히, 다방면에서 고창군을 모니터링하고 외국생활을 해 온 사람의 색다른 관점을 담아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욱 보람있는 생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퀄리티를 높여 준 고창군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유석영 기자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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