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고창군이 20일 오후 동리국악당에서,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신주백 교수를 초청하여 군민포럼을 열었다.
신주백 교수는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고창의 위상’을 주제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진 고창의 의병활동부터 3·1운동, 30년대 4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항일 독립운동을 시대별로 고찰하면서 그 의의를 짚어보고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함으로써 청중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번 군민 포럼은 지역 내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참석하여, 자라나는 세대에게, 독립운동 역사를 고창맞춤형으로 배우고 현장감있게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로써 학생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호국의식을 고취하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신주백 교수는 “고창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일제강점기 동안 강압적인 통치에 맞서며 헌신했던 고창 의병들의 활약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뿌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창에는 조선시대부터 운곡서원, 도동서원 등, 선조들의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는 교육기관이 많았고, 이러한 교육열은 망국 후에도 장학계, 청년회 활동으로 이어져 독립운동의 기반이 되었다며, 흥동장학계, 고창청년회 등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1914년 성내 출신 근촌 백관수 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90여 명의 계원이 모여 결성한 흥동장학계는 고창지역의 3.1운동을 주도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성내보통학교와 고창고등보통학교의 설립을 후원하고 인재양성에 힘쓰며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1931년 성내면에 지은 흥동장학당 건물은 항일 애국지사들의 넋이 깃든 유서깊은 곳으로 1998년 전북 문화재자료 제140호로 지정되고, 2014년 국가보훈처 A급 사적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1918년 11월 창립한 고창청년회는 호남 군 단위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조직된 청년회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1906~1909년의 의병 항쟁 등 격동기에 성장기를 보낸 은규선, 김승옥, 신기업 3인방이 계기를 만들었고 30여 명의 우국 청년들을 규합하여 핵심 요원을 양성하는 한편, 김성수, 백관수 등 향토출신 해외 유학생 등과 연락하면서 세계 정세를 살펴 고창에서 핵심적인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청년 조직의 결성을 주도했다. 이 때 건립된 청년회관은 매일 수백 명의 청소년들이 찾아와 신문화를 접하고 시국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정보 제공소의 역할을 수행하고 밤마다 야학 교육이 이루어지는 등 고창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신지식의 제공과 계몽 활동의 중요한 장소였다. 이처럼 고창청년회는 단순한 청년 운동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항일 운동으로 독립 운동까지 그 활동 영역을 확장한 청년 활동 단체로 민족 사학의 본산인 고창고등보통학교 설립의 모태가 되었다.
한편, 유교계는 1912년 고종의 밀명으로 전라도 지방에서 비밀결사단체인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대한제국 왕정복고와 전국적인 의병투쟁을 준비하다가 많은 핵심 인물들을 잃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유교계는 대대적인 장서운동을 일으켜 이에 호응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파리장서운동인데 137명의 유림 대표가 전문 2천 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게 된 것이다. 이 장서는 심산 김창숙이 짚신으로 엮어서 상해 임시정부로 가져갔다. 임시정부에서는 다시 이것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한문 원본과 같이 3천 부씩 인쇄하여 파리강화회의는 물론 중국, 그리고 국내 각지에 배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면우 곽종석을 비롯한 수많은 유림들이 체포되고 투옥되었다.
후에 상해에서 각 고을 향교로 발송한 한문 본 청원서가 발각됨으로써 137명의 이름이 알려졌는데 이 중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선생이 고창출신으로 이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2014년 3월 고창읍 석교리 새마을공원에 독립운동 파리장서 기념비를 세웠다.
신 교수는 이처럼, 고창 성내 출신 근촌 백관수 선생을 비롯해 항일 독립 의병운동에 앞장선 정시해, 김공삼, 박도경 의병장, 유림들의 외교 독립투쟁이었던 파리장서에 앞장선 고석진, 고예진, 고순진, 고제만 선생의 업적을 상세히 소개했다.
또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지식인들의 교육 및 문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이루어진 성과들이 지역의 많은 기념관과 유적지로 남아 후손들에게 그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우리의 독립운동사는 단순히 지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미래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라며 오늘날에도 그 역사적 정신을 이어받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군민포럼에 참석한 심덕섭 군수는 “고창의 독립운동사는 모두에게 큰 자부심과 책임감을 안겨주고 우리 사회의 정의와 자유를 실현하는 토대가 됐다”며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다양한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던 고창을 역사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유석영 기자 / 사진 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