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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한 2023년 한국의 기부지수는 세계 79위다. 이 순위는 2013년 45위에서 10년 만에 34위 하락한 순위로,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지만, 기부문화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기부하기 힘든 우리나라의 환경을 시사하는 것 같다.
혹은, 10여 년 전 기부순위가 높았던 이유가, 근농(根農) 김병호 대표와 같은 ‘기부바이러스 유포자’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350억 원을 기부하여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병호(83)·김삼열(74) 부부가 지금은 고창에 살고 있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고창군이 좋은 사회라는 방증이며, 지역공동체를 위한 긍정적 신호로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조용히 지내기를 바라는 부부를 어렵사리 만나, 사회와 미래 세대에 전하는 감동스토리를 들었다. 근농은 용인시 소재 서전농원 대표로서, 2009년 경기도 용인 임야 등 2만여 평을 KAIST에 학교발전기금으로 1차 기부했고, 2011년에는 부인 김삼열 여사가 남양주의 토지 600여 평을 2차로 기부하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부부가 기부한 토지는 시세 350억 원이 넘는 가치였으니,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가치가 배 이상 올랐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병호, 김삼열 부부의 기부가 주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 부부가 13년간 거주했던 경기도 용인의 시니어타운 '삼성노블카운티'에서 총 11명이 KAIST에 큰 규모의 기부를 했다는 점이다.
근농은 일제 강점기에 부안군 농촌마을에서 태어나 10살에 6.25를 겪었다. 그의 아버지는 부잣집 막내아들로, 심약하여 가족을 돌보지 않았고, 기울어만 가는 가세 속에서 7남매의 장남인 그는 어머니를 도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서울 동덕고녀를 나와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공부를 많이 했고 성품 또한 올곧고 굳세어, 평생 그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근농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로부터, ‘대가 없이 남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먹지 마라’, ‘여유가 있다면 항상 남에게 베풀고 살아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난한 환경 때문에 초등학교도 간신히 졸업한 그는, 시골에서는 머슴살이밖에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17세에, 농사일로 모은 품삯 760환을 밑천 삼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서울살이의 고단함을 그는 “도둑질말고는 다 해봤다”는 말로 전한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가게에서 1인 4역을 하며,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일과는 밤12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남들에게 항상 깔끔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단벌옷도 자주 빨아, 다림질 대신 이부자리 밑에 깔아 펴서 입었고 고무신도 항상 깨끗하게 씻어 신었다. 전차비를 아끼기 위해 뛰었고, 타는 목마름에도 냉차 한잔 값도 쓰지 않았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 고생해서 번 돈을 커피마시는 데 쓰는 또래의 청년들을 보며,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근농은 ‘최선의 방법은 번 돈을 쓰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술, 담배, 커피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구두쇠 소리를 들었지만, 그 별명이 오히려 좋았다는 근농은 상경한 지 2년 만에 고향을 다녀 온 후, ‘내 장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남의 가게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식구들 거두기도 힘들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일하며 저금한 2천환으로 ‘대한 모비루(mobile oil)’라는 기름 가게를 열며 첫 사업을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19살 때였다. 돈을 못 받고 떼이는 등 수많은 어려움에 부딪히면서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시련을 계단처럼 밟고 올라가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지탱했다고 한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근성,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그의 사업은 세차장, 운수업, 건축업 등으로 규모가 커졌고,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인연을 쌓은 9살 어린 아내와 결혼에도 성공하게 된다. 김삼열 여사는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였고, 근농과는 나이 차, 학력 차가 커서 처가의 반대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평소에는 짠돌이지만, 투자 해야 할 때는 과감해지는 그의 사업적 수완은 결혼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아내와의 데이트 비용은 아끼지 않았고 뭐든지 가장 맛나고 멋진 것으로 해주려 애썼다. 신혼여행 마지막 밤에 ‘돈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쓰는 것은 예술처럼 써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성공적인 투자가, 김삼열 여사와의 결혼이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많은 형제로 늘 어깨가 무거워 자녀를 많이 낳고 싶지 않았다는 그는 슬하에 아들 하나만 두었다. 외동아들이지만, ‘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엄하게 키우며 자립심과 경제관념을 심어주었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며 남을 돕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가르쳤다.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자녀를 바보로 만드는 것과 같다’는 생각으로, 아들에게 물질보다는 ‘기부’라는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고 싶었던 그의 철학은, 아들이 입학한 서울대에, 세 가족 모두 사후 시신을 기증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특히, 근농이 뇌졸중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난 후, 본격적인 기부를 실천했다. 고향인 부안군에 ‘부안군 나누미 근농장학재단’을 만들어 10억을 기탁했고, ‘전북도민회 으뜸상’으로 주어진 300만 원의 상금도 부안군에 기부했다. KAIST에 350억을 기부하게 된 것은, 매일경제신문에 실린 KAIST 총장(서남표)의 기조연설이 계기가 되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나라 살림이 좋아지고 국민복지와 행복도 가까워진다고 믿었던 부부는 KAIST에 기부의사를 밝혀 보름만에 ‘KAIST발전기금 약정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약정식은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부부는 청와대 오찬에도 초청을 받았다. 부부의 기부는, 2010년 KAIST 명예경영학박사 학위, 2012년 국민훈장 목련장’ 수여로 이어졌으며, KAIST에는 2013년에 지하 1층, 지상 10층 규모의 ‘김병호·김삼열 IT융합빌딩’이 준공되었다. 이 건물 1층에는 부부의 전신 동상이 세워져 부부의 삶은 KAIST의 역사와 영원히 함께하게 되었다. 기부 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개운했다는 근농은, 좋아서 땅을 산 것뿐인데 이 나라가 그 땅의 가치를 만들어 주었으니, 자신은 그저 사회에 진 빚을 갚은 것이라고 말한다. 기부 이후, 도와달라는 개인과 단체에 시달림을 겪기도 했지만, 기부로 인해 좋은 인연과 새로운 행복을 얻었고 기부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만끽했다고 전한다.
한 사람이 어떻게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부부의 선한 영향력은 우리 사회에 희망과 용기를 전한다. 유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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