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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성 서문 아래 전통예술체험마을이 지난해 8월 26일 문을 열었다. 고창문화관광재단이 고창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이 공간은 고창군의 전통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 세월 선조들의 삶과 함께 호흡해 온 고창의 전통예술은, 이제 체험과 교육, 공연을 아우르는 새로운 문화공간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예인(藝人)들의 예술혼으로 다시 숨 쉬고 있다. 본지는 전통예술체험마을을 무대로 활동하는 예인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손끝과 숨결을 통해 전해지는 고창 예술을 조명하며 이들의 활동을 소개함으로써, 전통예술체험마을에서 살아나는 전통의 가치를 알리고, 지역 문화의 깊이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전통 도예의 공간, 황토재 고창전통예술체험마을의 도예 공간인 ‘황토재’는 유춘봉 도예 명장이 작업과 전승을 이어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고창 청자를 중심으로 분청자기와 백자까지 전통 기법에 기반한 다양한 도자 작품이 전시·제작되며, 도예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체험이 함께 이루어진다. 도예는 흙을 빚어 불로 완성하는 전통 공예로, 성형과 조각, 유약, 소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장인의 손과 감각에 의존한다. 특히 고창 도자는 황토에 함유된 산화철 성분과 장작가마·물레 작업 등 전통 방식이 어우러지며, 묵직하고 중후한 질감의 청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황토재는 이러한 고창 도자의 전통을 온전히 보존하고 다음 세대로 전승하는 현장이자, 흙과 불의 시간을 통해 도예의 본질을 마주할 수 있는 전통예술 공간이다. □ 전통과의 첫 만남 “제 도예 인생이요? 64년 10개월 됐습니다.” 그는 이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도자기와 함께 있었으니, 도예를 시작한 시점을 굳이 나눌 수 없다는 의미다. 태어나기 전부터 흙과 불의 기운 속에 있었고, 그렇게 도자기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에게 도예는 배워서 시작한 기술이 아니라,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몸에 밴 삶의 언어였다. □ 손끝에 깃든 시간 “배워서 했다기보다, 몸에 배어 있었던 것들이죠.” 그의 기술은 배워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반복된 시간 속에서 몸에 스며든 감각이다. 학창 시절 미술대회에 나가면 늘 상을 받았지만, 그는 그것을 재능이라 여기지 않았다. 도자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에는 땅에 그림을 그리고, 나뭇가지와 사금파리로 무늬를 그리며 놀듯 연습했다. 지금도 연필 스케치보다 바로 칼로 조각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쌓인 감각적인 손끝이 오늘의 작품을 만든다. □ 가장 힘들었던 시절 “예술의 길은 배고프고, 춥습니다.” 도자의 길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일곱 명의 기능공을 두고도 늘 고단했고, 집안 형편 역시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유 명인은 이 길을 놓지 않았다. 곡성이나 영덕 등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이주를 제안받았지만, 그는 모두 고사했다. “고창자기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에게 고창은 단순한 고향이 아니라, 전통이 이어져야 할 자리였다. □ 고창 청자의 정체성 “중후함입니다. 묵직한 맛이 있어요.” 유춘봉 명인은 고창 청자의 특징을 ‘중후함’이라 말한다. 다른 지역의 청자가 맑고 가볍다면, 고창 청자는 묵직하고 깊다. 석고나 주입식이 아닌 전통 물레 작업을 고수해 형태와 무게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고창의 황토가 있다. 산화철이 풍부한 황토가 고온에서 환원 과정을 거치며 깊은 비취색 청자를 만들어낸다. “황토를 넣었더니 청자가 되더라”는 그의 말은, 고창이라는 땅 자체가 기술의 기반임을 말해준다. □ 전통을 잇는다는 것 전통을 지킨다는 일은 혼자 완성하는 기술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건네는 과정이다. 그는 수십 년간 도예 교육을 이어왔다. 문화원, 지역 마을, 한센인 공동체까지 교육 현장은 확장됐다. 흙을 만지며 사람들이 점차 건강해지고, 표정과 걸음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도자는 그에게 공예가 아니라 삶을 회복시키는 도구였다. □ 교육과 전승의 현장 그의 작업장은 체험 공간을 넘어 전승의 현장이다. 성형과 조각, 유약까지 전통 방식을 온전히 가르치며, 칼을 사서 쓰기보다 직접 만들고 갈아 쓰는 법부터 전수한다. 그렇게 길러낸 제자 중 다수가 강사로 성장해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제자들의 전시회를 열어 자긍심을 세워주고, 수익금을 지역에 환원한다. 전통은 그렇게 사람을 통해 이어진다. □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이제 유춘봉 명인은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과제는 장작가마 복원이다. 1988년 태풍으로 무너진 가마를 다시 세워야 전통의 기준 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어 첫 개인전도 준비 중이다. 청자, 분청, 백자, 생활자기를 아우르는 전시는 ‘고창 전통자기의 맥’을 한 자리에서 보여주는 장이 될 예정이다. □ 한 문장으로 남기는 기록 “고창자기의 한 획을 그은 사람으로 남는 것, 그거면 충분합니다.” 유춘봉 명인의 바람은 크지 않다. 고창이 청자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남기는 것. 그의 평생은 지금도 그 한 문장을 향해 이어지고 있다. 김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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