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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 말맛으로 지역문학 지평 넓혀, 이강원 작가

제5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만금빌라』

2026년 03월 18일(수) 15:55 [(주)고창신문]

 

제5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만금빌라』



차진 말맛으로 지역문학 지평 넓혀, 이강원 작가




↑↑ 만금빌라 이강원 작가

ⓒ (주)고창신문




“정만은 삽을 떨어뜨렸다. 배를 움켜쥐면서 노둣돌에 쭈그려 앉았다. 죽고 싶었다.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살고 싶어, 죽을 것만 같았다.”
미처 먹지 못한 옴박지의 밥을 훔쳐먹은 ‘누군가’에 대해 ‘난도질한대도 분이 풀릴 것 같지 않던’ 정만은 죽을 만큼 강렬한 삶의 욕망을 깨닫는다.
“미금과 함께라면 살 수 있을까, 해 돋는 나라로 갈 수 있을까?”
정만은 설재동의 정혼자인 미금을 납치하다시피 데리고 서울로 향한다.
“미금의 마음을 얻을 만큼의 돈, 장인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돈”을 벌어 설재동보다는 잘 살아야만 하는 정만은 목수를 따라다니며 땅 파는 일부터 배운다.
정만은 동학혁명 때 관군이었던 징조한아씨(증조할아버지)의 업보로 처참하게 살해당한 부모를 쌍나발등 고랑에 몰래 묻었고, 몸을 의탁했던 외가 택동마을에서는 군경토벌대에 의해 무참히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주검을 수습한 터였다.
이후 그는 땅을 파면 ‘뭔가’가 나올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하지만 정만에게는, 트라우마가 된 이 거대한 비극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절박한 삶이 있었다. 정만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사업을 일궈 낸다. ‘만금빌라건설’은 정만과 미금의 이름을 딴 회사로 그의 사업적 성공과 가정적 안정을 상징한다.
그들은 복수심과 분노에 매몰되거나 자기 연민 혹은 이상(理想)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코 앞에 닥친 현실적 삶을 살아내는 존재이다.
정만은 과거를 덮고 물질적 안정과 삶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 소설은 그의 태도를 속물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성공을 통해, 인간이 먹고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서 삶의 조건을 확보하는 행위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이상과 명분을 앞세우는 인물들의 위선적인 면모를 고발한다. 예를 들어, 설재동은 부친의 뜻을 이어 동산고등공민학교를 세우고 교육자로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고등학생인 미금과 강제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박영호는 민주투사로 추앙받으며 정치적 성공을 이루는 인물이지만, 영은의 육체를 이용하고 결국 그녀를 죽게 하는 동기가 된다.
이러한 장면들은 이념적 명분이 인간의 욕망을 정화하거나 초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우연하고 일회적인 삶, 현실적 욕망과 선택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이념과 추상적 가치는 얼마나 무력하고 위선적인지 보여주려는 듯하다.

묘사나 설명을 최소화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은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삶의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삶은 해석의 대상이기 이전에 밀여붙여지는 경험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죽음과 삶은 너무 쉽게 교차하고, 생명은 무력하고 가벼워 허망하다.
한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따오기가 농약에 밀려 순식간에 멸종위기종이 되고, 주요 인물인 정만과 재동의 죽음 또한 너무나 허탈하게 묘사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다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이념적 명분과 도덕적 권위가 쉽게 위선으로 전락할 수 있는 ‘현실’의 굴레에서, 집을 짓고 관계를 이어 가며 삶의 조건을 만들고 나름의 가치를 추구한다. 때로 각자가 추구하는 ‘나름의 가치’가 달라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만과 그의 아들 수열의 ‘땅 파기’가 본질적으로 같은 문명적 행위임에도 추구하는 가치가 달라 갈등으로 이어지듯, 우리 역시 각자의 보물을 찾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땅’을 파고 있는 셈이다.

소설은 ‘동학혁명’, ‘택동마을 학살’, ‘고창 봉덕리 고분군’(쌍나발등) 등 고창의 삶과 역사 속에서 길어 올린 소재들을 통해 한 지역의 기억과 인간의 운명을 그려 낸다.
그중에서도 소설 속에 살아있는 고창 사투리는 『만금빌라』의 강점이다.
사투리는 인물의 출신과 삶의 배경, 정서적 온도를 동시에 드러내며, 역사적 사건을 추상적 서사가 아닌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로 끌어내린다. 이는 인물들의 현실성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 작품에서 독자는, 지역의 말맛을 통해 인물들이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만금빌라』는 지역문학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한편, 『만금빌라』로 ‘제5회 고창신재효문학상’을 수상한 이강원 작가는 1964년 고창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부여에 살고 있는 그녀는 ‘21세기 부여신문’에 『아버지의 첫 노래』를 연재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아버지의 첫 노래』와 충남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선정된 『소년의 강』, 소설집 『중정머리 없는 인간』이 있다.

유석영 기자



↑↑ 제5회 고창신재효문학상 수상작 '만금빌라'

ⓒ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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