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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꼭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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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0일(목) 11:09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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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작가 | 
| | ⓒ (주)고창신문 | |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소요산. 하늘과 맞닿은 서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굽이굽이 흐르는 냇물을 중심으로 네 동네가 둘러싸여 있다.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밝고 유복한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티 없이 맑은 웃음이 배어 있는 내 어린 시절이 질마재에는 오롯이 담겨 있다.
방앗간을 하던 우리 집 앞마당은 동네 놀이터였다. 유난히 개구쟁이였던 S, 수줍어 친구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던 M, 온갖 심부름을 도맡아 하던 J,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모둠을 지어 구슬치기 놀이를 하던 장면이 겹쳐 진다.
꽃다운 나이의 큰누나가 결혼식을 올리던 날, 예쁜 족두리에 연지곤지를 찍고 꽃가마를 타고 수양버들 늘어진 질마재 길을 따라갔을 때, 나룻배를 타고 좌치강을 건너 멀리 사라져 가던 누나를 보며 몸부림치며 서럽게 울던 내 모습도 보인다.
해 질 녘이면 어김없이 온 동네가 시끄럽다. 소꼴을 베어 지게에 지고 오는 동네 형들이 보이고, 집집마다 저녁 준비에 바쁜 누나들이 마당 한쪽에 있는 아궁이와 부엌을 부산스럽게 오간다. 이윽고 “00아, 밥 먹어라!”라는 아짐들의 호출에 다들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짐들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지청구하며 씻기고, 그렇게 하루가 끝나 간다.
형들이 동네 앞 바닷가 방파제에 나가 대나무 가지를 꺾어 만든 낚시대로 잡아 온 운저리 생선 살을 떼어 슬며시 밥 위에 올려 주시던 아버지는 “잘 놀았냐, 우리 막내 동준아!”라며 따뜻한 말과 함께 뭉툭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초겨울 몰아친 서해 바닷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소요산 꼭대기에 올라 뺨에 닿는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그 찬바람이 무뚝뚝하고 때로는 무서웠지만 속마음은 다정했던 아버지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이는 못내 참았던 그리움이 울컥 쏟아지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기 때문일 것이다.
학창 시절 검도 선수로 전국체전에 전라북도 대표로 출전할 때, 두 손을 꼭 잡고 눈을 마주치며 용기를 주시던 어머니의 눈빛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학교 정문에 현수막이 걸렸고 카퍼레이드까지 펼쳐졌다. 부모님에겐 자랑거리가 생겼고, 집안에는 큰 경사였다. 하기야 전북 MBC 스포츠뉴스 방송 인터뷰까지 할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자랑할 만했다.
어느 날인가, 방앗간 벨트에 손을 다쳤던 날 아버지의 호통에 눈물을 글썽이던 나를 꼭 껴안아 주시던 어머니의 품은 세파를 견디는 원천이기도 하다. 이제는 두 분 모두 소요산에서 오십여 리 떨어진 조동의 양지바른 곳에 누워 계신다.
힘든 고비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유일한 것은 부모님의 사랑과 따뜻한 품이었다. 사무치도록 부모님의 품이 그리울 때면 새벽이라도 차를 달려 두 분이 잠들어 계신 곳을 찾는다. 실컷 울고 부모님께 올렸던 소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봄눈 녹듯 시름이 사라지고 또다시 용기가 생긴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그 많던 그리운 사람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다. 유난히 짓궂었던 친구들 중 셋은 무엇이 급했는지 빨리도 하늘로 돌아갔다. 집 앞을 지나가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고구마를 쥐여 주던 어여뻤던 사촌누이들도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마디 마디 깊이 패여 있다.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
소요산 꼭대기에 자주 오른다. 꼭대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고향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이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리운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고, 친구들이 뛰어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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