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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장군 생가 복원 의미 상실

2001년 07월 04일(수) 17:46 [(주)고창신문]

 

봉건전제에 짓밟히고 있는 민권을 부르짖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위기에 처한 민족을 구하려 민중을 이끌고 무명의 동학접주(東學接主)로 갑오동학혁명을 영도한 민족의 선각자요 불요불굴의 의지력과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전봉준 장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에서 출생한 전봉준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한 전봉준장군 생가 복원 사업이 2001년 3월 19일 완공됐다.

하지만 전봉준 장군의 생가 복원이 전봉준 장군이 살았던 역사적 사실과 거리를 보여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전봉준 장군의 생가는 현재 5칸 접집으로 지어져 있다. 이는 그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볼 때 지주계층들이 살던 집으로 가난해서 혁명을 일으켰던 사람의 집이 지주계층이 살던 집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이처럼 아무런 증거 확보없이 역사도 바로 알지 못하고 지어져 복원이 아니라 신축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전봉준 장군의 아버지는 그당시 훈도 생활로 겨우 생계를 꾸려갈 정도였다고 전해져 이같은 설명이 들어맞고 있다.

이에 군관계자는 “전봉준 장군의 생가를 복원할 때 증거자료가 없어 동네 형태와 그 마을에 사는 나이든 사람들의 말을 모아 집을 짓게 되었다”며 “또한 동네 옛건물을 보고 그 기준에 맞춰 집을 지었으며 사학자 등 많은 전문가들에게 문의를 했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전봉준 장군 생가를 알리는 도로 표지판은 거창하게 전봉준 장군의 생가터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정작 생가터에는 ‘이곳은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전봉준 장군이 태어난 곳입니다’라는 표지판만 있고 전봉준 장군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으며 전봉준 장군이 어떤일을 했는지조차 알수 없어 아이들 교육을위 해 찾은 방문객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서울시 성동구에 사는 장영철씨는 “무성의한 안내판과 실내장식이 너무 형식적이어서 성의가 없어 보인다며 최소한의 장식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문객은 “관광지라고 온동네 표지판은 세워놓고 안내판 하나도 없으니 너무하다며 역사를 알리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군관계자는 쟁기 및 물지개 등 생활도구 등은 예산이 확보되는 데로 갖다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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