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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종려나무의 인생"(가을의 단상)

김양일(수필가)

2001년 10월 19일(금) 17:53 [(주)고창신문]

 

지난 여름은 무던히도 더웠다.

기상청의 발표로는 70년만의 폭염이라고 했다.

인류문명의 발달과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로 자연환경의 파괴와 지구상의 온난화현상에 기인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8월 평소친교가 있는 향리 고창 문협 소속일행에 동참하여 중국, 싱가폴, 인도네시아 바탄섬 등 동남아 문학기행에 아내와 함께 7박8일 동안 그 나라의 문학예술계도 돌아보고 피서도 할 겸 다녀왔다.

그러나 우리일행이 주유한 그 나라들은 너무 더워 결국 이열치열의 피서가 된 셈이다.

상하의 계절이라는 나라를 다니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내 나라의 고마움을 새삼 깨달은 기회이기도 했다.

내가 즐겨듣는 악성 비발디의 포시즌(사계) 선율을 표상하는 내 나라 내 고향 산천에 너무 감사했고 살맛 나는 계절의 묘미를 실감할 수 있었다.

최근 나의 생활은 무덥고 지루한 지난여름을 보내왔던 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웠던 생각이 든다.

어느새 추석이라는 절기를 망각할 정도로 또 내 사무실의 구석 한켠 화분에서도 이미 그새 봄, 여름이 가고 가을의 전령이 찾아와 한 포기난의 들리지 않는 숨소리와 그 그윽한 향기를 맡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광대무변한 삭막한 사막에서 그 깊은 뿌리로 구천의 물과 연결되어 늘 푸른나무로 인고의 생명력을 지탱하는 한 그루 종려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한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종려나무는 그 특성으로 강인, 강직, 유용성, 불변, 승리의 상징이다.

만가지 슬픈 일, 만가지 기쁜 일로 채워진다는 사람의 일생에서 나도 종려나무와 같은 의인으로 인생의 유종지미를 거두어야 할텐데 고민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져주는게 이기는 것이고 생각은 깊게 마음은 편하게 하고 화를 내지 말고 말을 조심하고 내 마음 내 감정을 다스리고 사소한 일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으리라고 거듭 자신에게 천명하고 그 실천을 다짐한다.

그래야 실수가 없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지나온 인생이 얼마나 파란 많고 시련이 많은 인생인가. 이순에 접어든 지금 숙여하고 엄숙할 뿐이다.

지나온 인생에 회한과 자책의 심연에 고민하고 있다.

지금 나는 순간순간 지독한 고독과 기다림, 그리고 좌절이 엄습할 때는 파도가 위대한 선장을 만들고 경쟁력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만 길러지고 기회는 위기를 만났을 때 찾아온다는 희망을 버팀목으로 삼으면서 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을 전후해 등으로 햇살을 받으며 유랑자처럼 걷는 동안 문득 앞으로 코스모스, 들국화, 갖가지 야생화들과 함께 하게 될 시간들을 떠올리니 오후의 휴식 같은 안정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어느새 양복깃으로 찬바람이 느껴지기도 하는 계절이다.

그 동안 주로 사무실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사고와 주의마저도 편액속의 그림처럼 갇혀온 것에 대한 일종의 해방인 듯 싶다.

이번 주말에는 시간이 나면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 가까운 교외든지 어디든 산행이라도 하고 싶다.

하루에 한번은 맑은 하늘을 쳐다 볼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찾아야 하겠다.

또 더 깊은 삶의 활력과 열정과 용기가 생기도록 내 자신을 단련하고 연마하는 것이다.

아직 나에게는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일을 만들어 가야할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비단 이것이 나에게만 적용이 되겠는가마는 양지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다시금 새로운 시작과 각오를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천고마비의 이 국추의 계절에 내 고향 고창의 방장산 기슭에 자리잡은 선영도 찾아 뵙고 부모님 생전의 불효를 참회하고 벌써 16년전 너무나 일찍 세상을 떠나 평생 나의 인생을 어둡게 하고 나에게 못다한 한과 죄의식 속에서 살게 한 너무나 큰 아픔과 미련을 남기고 떠난 아내의 묘소도 찾아보고 싶은 우울한 가을이기도 하다.

가을은 선비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나의 남은 인생, 양심과 역사에 죄짓지 않고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종려나무와 같은 인생을 살 것이다라고 다시금 반추해 본다.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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