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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고창의 얼 판소리-동리 신재효 선생

판소리 공연의 이론과 미학의 기틀 마련

2002년 10월 11일(금) 17:52 [(주)고창신문]

 

광대소리를 위해 만장의 기염과 소담한 자료와 이론적 유산을 남겨놓은 이가 바로 신재효이며 이제 그의 생전의 업적으로 인하여 판소리의 성자가 되었고 국문학사는 그를 위하여 판소리를 하나의 문학 형식으로 정립해 놓았다.



타락한 조선조 양반소설이 기울어져 갈 즈음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서민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 연출가이며, 광대의 지휘자이기도 하다. 또한 광대들 뒤에서 그 사설을 정리하여 준 숨은 공로자로 해박한 지식과 절묘한 기법으로 판소리 사설(타령)의 창작과 집대성으로 필생의 대업을 이루었다.



신재효 선생은 지방관청의 서울 일을 대신 해주던 경주인 노릇을 하다가 고창으로 내려와서 관약방을 했던 신광흡의 아들로 순조 11년(1812)에 태어나 고종 21년(1884)에 세상을 떠났다.



선생의 자는 백원(百源)이요 아호는 동리(桐里)다.

조선조 후기 향리의 사회적 성격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있고 향리로 살아간 신재효 선생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지만 그는 특별한 개인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선생이 모은 재산을 모두 판소리를 지원하는데 사용한 것을 보면 그는 단순히 생활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판소리를 감상한 것이 아니라 판소리를 육성하고 이론적 탐색과 연구를 통해 발전시킨 판소리의 중흥가임에 틀림없다.



신재효는 당대의 유식한 판소리 대가 정춘풍과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이었다.

물론 신재효는 정춘풍과 같은 전문적인 직업창자는 아니었고 판소리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지원가였기 때문에 오늘날 그의 계보에 속한 판소리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그는 판소리의 양대 유파인 동편제와 서편제의명창들에게 두루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는데 동편제에 속했던 박만순, 김세종, 전해종, 김창록, 진채선, 허금파 등과 서편제에 속했던 이날치, 김수영, 정창업 등의 명창들은 직접 그의 이론적인 지도를 받거나 지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이날치는 김채만, 최득, 이창윤에게 정창업은 송만갑, 전도성, 정학전에게 김세종은 허금파, 이동백, 성민주, 이선유, 장자백에게 박만순은 정정렬, 유공렬에게 소리를 전수시켰으니 신재효 선생이 내려놓은 줄기가 얼마나 굳게 내려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동리선생은 학문과 음률, 가곡, 창악, 속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 지도하였고 대표적인 공적으로 옛날부터 구전으로만 전래되어 온 판소리를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흥보가), 가루지기타령(변강쇠가), 적벽가, 토끼타령(수궁가)등 판소리 여섯 마당으로 집대성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1940년 후반 가람 이병기 선생은 ‘동리선생은 한국이 낳은 동양의 세익스피어’라고 극찬했으며 선생의 학문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가사문학의 산실인 동리정사는 소실되고 그 일부인 사랑채만이 남아있으며 1979년 주요민속자료 39호로 지정되었고 동리국악당은 동리선생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군민의 뜻을 모아 1990년 완공했다.



동리국악당은 판소리 발전을 위해 상설국악교실운영, 동리대상 시상, 판소리 다섯마당 발표회, 전국 어린이 판소리 경영대회, 연수생 발표회 등 여러 가지 행사를 열고 있다. 또한 우리고장 출신중에는 김수영, 김창록, 김찬업, 진채선, 허금파, 김토산, 김여란, 김소희, 김이수, 김경희 등 판소리 10대 명창들이 있다.

또한 지난해 6월 25일 개관한 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복원되어 남아 있으며 바로 옆에는 동리 국악당이 있다. 판소리 박물관은 이와 같은 판소리의 유형무형의 자료를 수집, 보존, 조사, 연구, 전시, 해석함으로써 일반대중에게 수준높은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마침내 판소리 성지화를 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이와 같은 판소리 활동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며 다각적인 문화사업을 연구하여 전국에 우리 고장의 얼을 알려야 할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 신재효 선생이 아전으로 기록돼 있었으나 한량(閑良)인 것으로 밝혀져 신재효 선생에 대한 고증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한량(閑良) ①조선 시대에 양인(良人) 이상의 신분으로 벼슬이 없이 한가롭게 지내던 사람. ②조선 시대에 무과에 응시한 사람. 또는, 무반(武班) 출신으로 아직 무과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

※아전(衙前): 조선시대 서리의 딴 이름.



고창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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