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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향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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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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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30일(월) 17:49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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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옷을 벗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 텅 빈 공간을 히끗히끗 드러낸 산, 오늘 따라 새들도 조용합니다.
이렇듯 시간은 우리들에게 지금이라는 옷을 벗게 하며 마음의 고향을 찾아가게 합니다.
요 며칠 겨울다운 추위가 세모(歲暮)로 가는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습니다. 남쪽 따뜻한 곳이라 좀처럼 얼지 않는 이곳 경주의 형산강 강물이 군데군데 얼음판이 되었고, 거기에 떨어지는 이른 아침의 햇살은 눈이 부셔 시릴 정도로 깨끗하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정든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 반세기가 지나는 과정에서 이곳 역사와 문화가 서린 천년고도 경주에 온 지도 어언 사반세기의 세월이 흐르고 있습니다. 나의 모교 동국대학교에서 제2의 대학캠퍼스를 이곳 경주에 세워 인연을 맺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내년 2월이면 정든 고향을 위해 별다른 봉사를 했다거나 몸담았던 교육의 내실화에 크게 기여한 것 없이 40여년을 정리하며 교단을 떠나게 된 점 보람 있었다기 보다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고향의 벗들과 도솔암 산정에 올라 변산반도에 내리던 서해의 석양 붉은 落照(낙조)를 지금에 와서 되세기며 언제나 어머님 품같은 고향 전북 고창 아산에서의 지나간 추억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또한 내 삶의 자양분으로 항시 마음속에 살아있기에 지워지질 않습니다.
섣달 그믐날 아버님 손을 잡고 시어재 넘어 선운사에서 하룻밤 보냈던 일, 서흥동 집앞뜰에 방장산에 올라 몰래 삼나무를 베어다 평행봉을 세웠던일, 중·고 시절 친구들과 모양성에 올라 방장산을 바라보며 야호하고 소리치던 일, 선운사 소풍갔던일 등 또한 대학의 재직시절땐 땀흘려 기른 제자들이 국가대표선수가 되며 국제무대에서 매달을 거둬드리는 보람, 엊그제 부모님 밑에서 어리광 부리던 고등학교를 갓 졸업해 입학한 철없던 제자들이 성인이 되어 졸업을 해서 사회에 진출할 때면 멀리서 바라보던 나의 흐뭇한 마음이 나름대로 삶의 보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모든 나날들이 작은 보람이요, 소망이 내 고향 성산기슭의 보리밭에서 자란 보리알 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느 큰스님이 나의 고향이 고창인줄 알고 "고창에는 큰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고장이야"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 선배들의 발자국을 이어가지 못한 후학의 한사람으로 부끄럽기 한량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기라성 같은 후배들이 배출되어 경향 각지에서 고향에 대한 愛鄕心(애향심)과 自矜心(자부심)을 지니고 생활하는 것을 볼 때면 커다란 희망이 믿음이 있어 마음이 든든해지곤 합니다.
지난 추억들이 되살아 날 때면 늙어가는 징후라고 말씀하시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이제 나에게도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아 늙어가는구나 싶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잊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머지 않은 날, 선운사 동백꽃 그 붉음을 보러 고향에 갈까합니다. 그리고 모양성 넘어 봄이면 풍겨오던 들녘의 보리 내음과 향토의 맑은 향기에 흠뻑 젖고 싶습니다.
그동안 고향을 굳굳하게 지켜오신 여러 어르신 분들, 선배님, 친구들,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후배들과 가족들 특히 지난번 본인의 정년퇴임기념 화보집 봉정식에참석해 주신 각양각처의 모든 선·후배, 친구들에게 머리숙여 감사드리며 다가오는 癸未年(계미년) 새해에도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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