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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부유한 노예』가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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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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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1월 17일(금) 17:49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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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무너지고 없는 세계무역센터 앞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인간이 건설한 문명의 덧없음을 거듭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이 사진을 찍고 채 20일이나 지났을까? 9.11테러로 이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이 달리기만 하는 인간의 문명에 대한 경고처럼.
이렇게 끝을 모르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과연 그 발전이 인류 모두를 위한 발전이며,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행복해 졌을까? 뉴욕에 갔을 때 내 느낌은 한마디로 '아니다'였다. 이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우리가 앉아있었던 그 자리 옆에는 남루한 옷차림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무어라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앉아있었던 백인 여자가 있었다. 화려하고 웅장하며 거만하게 서 있던 100층이 넘는 두 빌딩의 그늘아래서 그녀는 너무나 초라하고 불행해 보였었다. 뉴욕이라는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잰걸음으로 옆도 돌아볼 여유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고에 찌든 고단한 삶이 있었다.
부유한 초국적 엘리트들의 사무실에서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그들은 타고난 가난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탓에 저임금의 서비스업에 종사함으로써 생계를 꾸려나가는 극빈층들인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수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들이다. 돈 없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뉴욕은 그래서 절대로 행복한 도시가 아니었다. 하긴, 이 세상 어느 도시에 간들 돈 없는 이방인에게 행복한 도시가 있을 것인가?
어쨌거나, 『부유한 노예』라는 책은 인류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신경제의 화려한 측면과 그 이면에 숨겨진 고단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간에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이고, 그러한 삶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인 로버트 라이시 Robert B. Reich(1946~ )이고 바로 이 사람이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일하다가 돌연 장관직을 사퇴하고 가정으로 돌아감으로써 '일'과 '삶'에 관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떠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그가 그토록 열정을 다 바쳐 해오던 일을 버리고 가정을 택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방향도 없이 질주하고 있는 우리를 붙들고 잠시 앉아 이야기 해보자고 권한다. 물론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많은 사람들은 일의 노예가 되어도 좋으니 제발 부유한 노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라이시의 선택은 다만 부자의 여유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정체성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적어도 행복,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나 상실되고 있는지에 대해 약간의 암시를 받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삶이 힘들다고 느끼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공감을 나누는 것 같았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왜 삶이 그토록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지... 우리는 왜 끝없이 경쟁속으로 자신을 내던지지 않으면 안되는지.. 저자는 우리가 미처 궁금해 할 여유조차 없었던 그런 사실들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으로 신경제의 특성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석기시대의 인간은 일주일에 14시간 정도 일했다고 한다. 14시간이면 현대인들의 하루 반 정도에 해당하는 노동시간이다. 물론 현대인들은 석기 시대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갖췄다. 늘어난 수명과 영양상태, 풍요로운 물질문화와 눈부신 과학기술 등. 문제는 이런 것을 얻기 위해 현대인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과연 현대인들이 석기시대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혹은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인류는 신경제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가지고 좀 더 풍요로워지고 편리한 삶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지만, 그 이면에는 끝없는 경쟁 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기업의 상황과 그로 인한 안정적 삶의 상실 그리고 엄청난 빈부의 격차와 세습적 빈곤, 인간적 관심조차 돈으로 해결되는 물질주의의 팽배, 안정적이고 유대감 강한 가정의 붕괴 등등의 비싼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 해 보았을까?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장 유리한 가격과 최고의 품질을 단지 클릭 한번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화의 세상 속에서 신의나 의리 따위의 인간적 가치는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들을 끈끈하게 묶어둘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들을 계속 찾아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면 한 개인은 독창성과 전문성이 뛰어난 '기크'나 상업적 수요를 기막히게 예측해 낼 줄 아는 '슈링크'가 되기 위해 쉴 틈없이 일의 노예가 되어야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으며 생계 자체가 어려워진다.
훨씬 중요해진 인맥을 바탕으로 끝없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대인들의 삶, 그것을 위해 과감히 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인간적인 관계들, 이토록 숨막히는 경쟁을 참고 견뎌 승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대표적인 보상은 매력적이고 안전한 지역에서 성공적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이다. 자녀들을 훌륭한 놀이방과 학교, 나아가 명문대학에 보낼 수 있다. 실력있는 의사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언제 어디를 가든 더 많은 관심과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삶이 보장되는 것이다. 반면, 패자들의 주거지역은 위험하며 아이들 학교는 형편없고 의료서비스는 최소한이거나 심지어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멸시이다. 이러한 구조적 현상 속에서 빚어지는 분류, 즉, 주택분류, 학교 분류, 대학 분류 등으로 표현된 빈부 격차 문제와 빈부의 세습 ,이러한 문제들은 결코 개인의 선택으로만 해결될 수 없으며 사회적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결론은 어쩌면 너무 진부해 보인다. 균형을 이룬 사회에 대한 희망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으며, 오늘날 그 가능성은 더욱 더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러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어떻게 관심을 기울 일 수 있을까라는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것은 너무 황당해 보이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적절한 교육이 부족한 사람들, 그로 인해 빚어지는 그들이 고립된 삶, 인맥과 자본의 부족함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모든 젊은이가 18세가 될 때 일종의 금융자본금을 제공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과연 그런 방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나 한 것이며 그렇다고 하였을 때 그 돈을 둘러싸고 빚어질 수 있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사태들은 또 어떻게 해결해야 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겼다.
아무튼, 저자는 몇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사회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갑작스런 경제적 충격에 대한 완충장치의 제공(예를 들면 소득보험)한다든가, 경제적 부의 수혜 범위를 넒히는 문제, 그리고 애정어린 관심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즉,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을 충분히 베풀 수 있도록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 주는 방안 등, 빈이나 부의 세습을 최대한 막을 수 있는 어떤 방안의 필요를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노력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은 생계와 삶을 조화시키려는 개개인의 노력과 도덕적 의무감이 필수적일 것이다.
꼭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의 이러한 주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의 분배의 문제는 그 해결방안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균형적 사회의 발전을 위해 꼭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할 사항들이며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야할 문제일 것이다. 인간적 삶을 보장하는 사회에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일 테니까 말이다. 적어도 나는 한 생명이 태어났을 때 혹은 죽었을 때 그의 삶이 단지 사회의 노동력으로 계산되는 사회에 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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