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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의 숨결(5) -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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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5월 19일(월) 17:52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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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의 숨결 편집방향을 바꿨습니다. 지금까지 1회 사적 제346호 무장읍성을 시작으로 사적 제391호 고인돌, 지방유형문화제 제91호 덕림사, 전통사찰 제30호 문수사 등 4회까지 진행했습니다. 편집방향을 바꿔서 고창의 지정문화재 종류별 하나하나 소개함으로 관광고창으로써 명성을 떨쳐가는데 고창신문이 앞장서겠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보물
2. 사적
3. 천연기념물
4. 중요민속자료
5. 중요무형문화재
6. 지방유형문화재
7. 지방기념물
8. 지방민속자료
9. 무형문화재
10. 지방문화재자료
선운사는 아산면 삼인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의 본사이다. 《선운사사적기(禪雲寺寺蹟記)》에 따르면 577년(백제 위덕왕 24)에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창건하였으며, 그후 폐사가 되어 1기(基)의 석탑만 남아 있던 것을 1354년(공민왕 3년)에 효정선사(孝正禪師)가 중수하였다.
1472년(조선 성종 3년)부터 10여년간 극유(克乳)가 성종의 숙부 덕원군(德源君)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공사를 했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본당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버렸다. 창건 당시는 89개의 암자와 189채의 건물, 그리고 수도를 위한 24개소의 굴이 있던 대가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613년(광해군 5년)에는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원준(元俊) 등 승려와 함께 재건을 도모, 3년에 걸쳐 대웅전·만세루(萬歲樓)·영산전(靈山殿)·명부전 등을 건립하였다.
선운사는 불교의 기본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왕성해지고, 불도(佛道)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지, 문자나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주장하던 선종(禪宗)에서도 선리(禪理)를 근본적으로 체계화하기 위한 운동이 일어나던 조선 후기에 불교학자 긍선(亘璇)이 처음 입산수도한 절이기도 하다.
주요 문화재 보물로는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 제290호 대웅전, 제803호 참당암대웅전, 제1200호 선운사도솔암마애불이 보물로 지정돼 있고, 지방유형문화재로는 제13호 선운사 석씨원류, 제28호 선운사영산전목조삼존불상, 제29호 선운사 육층석탑, 제31호 선운사 범종, 제33호 선운사 약사여래불상, 제53호 선운사 만세루, 제122호 선운사 백파율사비, 제155호 선운사 사적기가 있으며 지방문화재자료에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이 제125호로 지정돼있다.
한편 선운사는 절의 명성뿐만 아니라 선운사 동백꽃이 천연기념물(제184호)로 지정돼있어 서해안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많은 관광객이 선운사를 찾고 있다.
보물 제279호 선운사금동보살좌상(1957년 8월 30일 지정)
선운사 사적기에 의하면 1476년 조선 성종 7년에 조성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고려말과 조선초기에 유행했던 보살상의 시대적 양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선운사 관음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머리에 두건과 유사한 보관을 쓴 보살 좌상으로 형태를 보면 오른쪽 손은 위로 들어 올려 밖으로 향하고 무명지만 자연스럽게 굽히고 있고, 왼손은 무릎위 배 앞에 들려있다. 양팔에 각각 한쌍의 팔찌를 끼고 있으며 얼굴은 온유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보물 제280호 선운사지장보살좌상(1957년 8월 30일 지정)
선운사에서 서쪽으로 2km지점인 도솔암의 내원궁에 봉안되어 있으며, 머리에 두건을 쓰고있고 두발은 어깨뒤에 드리우고 긴 귀는 귓밥이 턱 밑까지 내려왔으며 용모는 단정하고 인자하여 위엄이 깃든 모습으로 고려후기 불상양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일컫는다.
보물 제290호 선운사 대웅전(1958년 9월17일 지정)
대웅전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양식을 가진 다포작 불전이다
보물 제803호 참당암 대웅전(1984년 11월 26일 지정)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시대에 의운화상이 창건하였으며 대참사라 하엿다. 참당암은 도솔암앞 법화굴에서 수도하던 의원화상이 꿈에 우진국왕의 계시를 받아 검당포(현 심원면 사등)연안에서 석선에 싣고 온 불경과 불상·보인 등을 인수받아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개창한 가람이다. 1329년(충숙왕 16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고 1530년(중종 25년)에 재중수, 1636년(인조 14년)에 삼중수, 1754년(영조 30년)에 사중수 했다.
보물 제1200호 선운사 도솔암마애불(1984년 11월26일 지정)
선운사 도솔암마애불상은 도솔암 왼편의 칠송대라 불리우는 암벽에 양각되어 있는 미륵좌상으로 높이는 약30m, 무릎폭이 약10m이며 무릎아래에는 삼단형식의 불단이 조각돼있다.
머리위 암벽에 사각형 구멍들이 10개이상 있으며 부러진 목재들이 보이며 가슴 한 가운데에는 배꼽과 같은 돌출부가 있다.
마애불은 원래 공중 누각을 지어 공중감실처럼 꾸몄는데 1648년(인조 26년)에 건물이 내려 앉고 동량을 걸었던 구멍이 남아있다. 마애불 배꼽 부위에 하얀석회로 만든 흔적이 수수께끼였는데 동학농민혁명 당시 손화중 접주가 무장에 머물면서 은밀히 꺼내보니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의 비결록이 있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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