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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장의 숨결-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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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6월 09일(월) 17:50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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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사적 제145호, 1965년 4월 1일지정)
고창읍성은 조선 단종 원년(1453년)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극복을 위한 국방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1965년 4월 1일 사적 145호로 지정되었으며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50,172평으로 동서북문과 옹성 3개소, 치성 6개소, 성밖의 해자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등 22동의 관아건물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대부분의 건물이 손괴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오고있다. 자연경관 또한 참으로 아름다워 하늘을 뒤덮는 노송과 빽빽하게 들어선 맹종죽은 운치를 더하여 준다. 지금까지 22동중 14동(동헌, 객사, 풍화루, 공북루, 진서루, 등양루, 성황사, 관청, 작청, 내아. 향청, 서청, 장청, 옥)이 복원되었고 앞으로 8동의 관아 건물도 복원할 계획이다. 또한 성밖의 외곽도로를 말끔히 정비하고 철쭉과 백일홍등 꽃나무를 심어 꽃길로 가꾸어 놓았다.
고창분청사기요지(사적 제250호, 1977년 7월 15일 지정)
부안면 소재지에서 약 6km지점 해안에 있는 요지는 야산의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총면적은 4,530평으로서 군유지가 3,088평, 사유지가 1,442평으로 되어있다. 이 요지는 l5세기 후반에서 16세기의 고려청자로부터 조선 분청사기로 옮아가는 과도기의 분청사기 가마로 전남 광주 무등산 가마와 함께 규모가 크고 다양한 대표적 요지이다. 이 요지에는 15-16세기 가마와 파편이 산재해 있어 그 당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고창 용계리청자요지(사적 제345호, 1991년 2월 21일 지정)
이 요지는 고창에서 선운사 방면 중간지점인 아산면 용계마을에서 윗쪽으로 운곡댐 중상류 쪽에 있다. 또한 이 요지는 40m~80m에 걸쳐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4개의 거대한 퇴적 구릉과 주변의 작업장, 건물터로 이루어진 청자가마터이다. 198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연구소에 의하여 아산댐 수몰지의 일환으로 발굴조사 되었고 그 후 사적 제345호로 지정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퇴적구릉 사이에서 3개의 가마가 겹쳐져 발견되는데, 가마의 길이는 38m, 31m, 14m로 일정하지 않았고, 가마폭은 1.1~1.2m였다. 가마벽은 안벽이 갑발과 석재를 사용하여 점토와 섞어 쌓고 바깥벽은 잡석을 점토와 섞어 쌓았다.
가마터 앞의 건물터는 작업장과 관리소로 추정되는 기와가 덮여 있는 대형 건물터로 확인되었으며 주변에는 점토등이 덮여 있었다. 이곳 가마에서 제작된 청자들은 대접, 접시, 완, 병, 호, 합, 탁잔, 발유병 등 다양하였으며, 드물게 운문, 초화문이 음각된 청자들과 함께 대부분 무문의 청자들이 제작되었다.
유약빛은 엷은 담청녹색이고 태토는 회백색인 양질의 청자였으며, 굽 바닥에는 회백색의 내화토받침을 받쳐 구웠다.
특히 해무리굽 청자완들이 주로 제작되었는데 태평 2년명(1022) 있는 기와조각과 함께 발견되어 11세기 초반을 중심으로한 고려초기의 청자가마터로 확인되었다.
전북지방에서 가장 오랜 가마터로 12세기에 줄포만을 낀 부안일대의 청자가마터로 옮겨가기까지 청자의 발생을 알려주는 귀중한 가마터이다.
무장읍성(사적 제346호, 1991년 2월 21일 지정)
무장면 소재지에 있는 이 성은 호남 내륙방어를 위해 축조하였으며 무장읍지에 의하면 조선 태종 17년(1417)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명이 동원되어 그해 2월부터 5월가지 만 4개월 동안에 축조했다고 전한다.
둘레 1,443m, 높이 3~4m, 넓이 99,012㎡이며, 당초 13동의 관아가 있었으나 현재 객사(지방유형문화재 제34호), 동헌(지방유형문화재 제35호), 남문인 진무루 등이 남아있다.
당초 토성으로 알고 있었으나 보수공사중 성벽 동쪽 끝부분의 단면이 흙과 물이 손괴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 오고 잇다. 현재 동헌■객사■풍화루■돌을 섞어 축조한 것이 밝혀졌으며 1894년 일어났던 동학 농민혁명은 이곳 무장읍성에서 처음 봉기하였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본보 280호 참고)
고창지석묘군(사적 제391호, 1994년 12월 21일 지정)
고창읍에서 북서편으로 약 2.5㎞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1,724m의 범위에 477기가 분포되어 있고 보호구역 지정면적은 892,546㎡이다.
이 일대의 표고는 최저 15m, 최고 199m로 매산마을을 기점으로 동서에 걸쳐 산줄기 범위내에 군을 이루며 등고선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이지만 공동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혹은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고창군은 한반도에서는 물론,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조밀한 고인돌의 분포지역이며 군내에 2천여기가 소재하고 있다. (본보 281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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