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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임으로 기억될 고창

장인수 (시인, 서울 중산고등학교)

2003년 08월 21일(목) 17:46 [(주)고창신문]

 

월곡고전문학연구회(약칭 월곡회)는 한국교원대학교 최운식 교수님과 그의 문하생들의 학술 모임으로, 고소설■설화■민속학 등을 주제로 매년 2회 세미나를 갖는다. 2003년도 하계 세미나는 고창의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렸는데, 이 지역 몇 곳을 답사하는 기회를 또한 갖게 되었다.



우선 청소년수련원 직원들의 친절이 퍽 인상적이었는데, 더욱 인상적인 것은 훌륭한 시설을 자랑할만한 공설운동장을 일반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푸른 잔디 운동장을 뛰어다닐 때 그 사람들의 몸과 영혼은 이미 새처럼 구름처럼 자유를 흡수하고 있었을 것이다.



<고인돌IC>라는 표지판은 내가 본 나들목 이름 중에 가장 예쁘다. 지명보다는 그 지역의 대표적 문화유산을 도로 표지판으로 쓴 고창 사람들의 예술적 안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 딴에는 상상력을 가미하여 <판소리IC.>, <신재효IC>로 했으면 어떨까도 생각했다. 그리고 <선운사IC>보다는 <서정주IC>가 훨씬 문학적 향취가 짙게 느껴지지는 않을까도 생각했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사람을 질투하고, 사람을 흠모하면서 그 사람의 예술혼을 찾아 헤매는 것이라고 본다면 정작 그러할 것이다.



도성(都城)이나 장성(長城), 산성(山城)보다도 읍성(邑城)이 가장 서민적 체취와 포근함이 배여있다는 사실을 고창읍성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고창읍성에서 정문을 들어서자 흡사 자궁의 형상을 빼닮은 옥(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폐쇄형이 아닌 개방형 옥(獄)이어서, 아이러니하게 수인(囚人)이 옥 안에 갇혔으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갖진 않았을까. 바위가 서로 휘돌고 얽혀 단순한 ‘성(城)’의 의미를 뛰어넘어 삶을 느끼는 아름다운 풍광이 되어 있었다.

북과 갓으로 동리의 고택을 형상화한 판소리박물관은 참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일반 대중에게 수준 높은 판소리 예술의 향취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했고, 별관인 무초회향미술관에 전시된 서예■미술■도자기류는 판소리와 어울려 우리 문화 예술의 체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 유적지도 둘러보았다. 판소리의 기원설 중에서 유력한 것이 ‘무가기원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가 발생 시기를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소급한다 해도 무리는 아닐까 싶었다. 상상력이 가동되면서 고인돌 바위 속에서 태고의 판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고인돌을 시력이 아닌 청력으로 감상하고 있는 사이 시대를 뛰어넘는 예술의 파도가 둥둥 밀려왔다.



미당문학관에 들렀을 때, 금세기가 낳은 커다란 시인 앞에서 시심을 되짚게 됨은 물론이었다. 풍부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볼거리가 많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박물관의 회색 시멘트 건물의 색깔이 서정주의 황토적 질마재 색깔과는 잘 맞지 않았고, 시인의 사진이 대체로 노년의 시절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자료의 전시 체계가 작품 발표시기 순이나 시세계의 변화에 따른 것이 아니라 표창장, 고위직함 위주라는 것이 눈에 자꾸만 거슬렸다. 그러나 박물관 한 켠에 오랜 시간 그늘과 바람을 만들어낸 전나무 아래의 대나무 침상에 누웠을 때에는 미당의 시상이 둥둥 떠올라 선인(仙人)이 된 듯 했다.

점심으로 그 유명한 풍천 장어를 먹고, 풍성한 예술혼을 한아름 안고 돌아오게 된 고창에서의 짧았던 경험이 앞으로 ‘고창’이란 두 글자에 설레임을 갖게 할 것이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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