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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의 放聲大哭(방성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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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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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8월 21일(목) 17:47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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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놀랍고 슬프다. 일년 동안 가꾸어온 목숨과도 같은 농작물이 18일간의 水災로 인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 그 피해액만도 수백억에 이른다.
농업인은 농작물을 생명보다도 소중히 여긴다. 벼 한포기 고추 한포기 병해를 입어도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식 키우듯 온 정성을 다해 애지중지 보살핀다. 왜냐하면 온가족이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유일한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때가 되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은 수박밭에서 고추밭에서 몇 푼 나온 돈으로 학자금이며 생활비를 절약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늘어만가는 빗을 걱정하시며 그래도 올 농사는 잘 되겠지 하고 어려운 가정을 이끌며 살아오셨다.
그러나 하늘은 이 작은 소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가혹한 시련만을 내리셨다.
돈 몇 푼이 없어 온가족이 목숨을 버리고, 사랑하는 자녀를 고층건물 밖으로 던질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고창군농업소득 수백억을 모두 수재로 잃고 억장이 무너지듯 생활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지금 5만여 고창농업인은 어찌하면 좋겠는가?
참담하고 가슴이 답답하다. 누구를 붙들고, 어디에 이 어려움을 호소하겠는가?
조선시대만 해도 흉년이 오면 임금님 스스로 금주령이 내리고 빈민을 돕는데 모든 행정력을 동원했다. 법을 어기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문책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온나라가 한 몸이되어 백성을 구제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저력이었다.
금번 고창군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농정사상 처음으로 재해가 인정되어 수십억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수백억의 피해액을 생각하면 그 내용에 서운함을 금치 못한다. 생활비며, 자식 등록금, 먹고 입고 살아가야 할 일들이 지금도 막막하기만 하다.
적어도 재생산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은 이루어졌어야 했다. 농업인은 자연재해를 수없이 겪었지만 정부를 믿었다. 적은 피해는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나라일을 걱정하며 묵묵히 살아왔다. 타 산업 피해에는 수십조원의 예산을 투입할 때에도 농업인 특유의 관용을 베풀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돈이 없고, 힘이 없고, 지위가 없다는 자책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해온 일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농업인에게는 항시 예외였다.
언제나 농업인의 몫은 제외되고 때로는 희생이 강요되었다. 농업인의 뜻과는 전혀 다른 정책입안으로 눈물을 흘리곤 했다. 농업인은 언제나 참는 자의 표본이었다. 그래서 농민의 운명은 항시 타인의 손으로 결정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농업인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고 있을 수는 없다. 모든것을 계획하고 연구하고 노력하며 스스로 운명을 바꾸어야 한다. 남의 손으로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농업인은 이 난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누구의 손에 이끌려 다니는 나약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식량 자급율이 30%도 되지 못하는 나라에서 새로운 농업정책, 농업에 대한 시각이 변화되어야 한다.
일제시대 장지연 애국지사는 시일야 방성대곡의 논설을 발표하여 온 민족을 일깨웠다. 그런대 누가 이 힘겨운 고창농업인의 고충을 일깨워 줄 것인가?
지금 방성대곡하는 고창농업인의 눈물에는 대안이 없다. 오직 스스로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만이 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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