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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미당시문학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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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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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0일(월) 17:54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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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세월을 두고 숲을 이룹니다. 인류는 창조본성을 찾아 선악분립역사를 통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마음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환경을 지배합니다. 역시, 환경은 마음을 지배하고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미당은 1915년 5월 18일 한일합방의 어수선한 시대에 선운리에서 태어납니다. 선운리는 하늘 끝에 닿은 소요산과 끝없이 출렁이는 바닷가, 별 따라 들어오고 나가시는 부모님, 밖에 나가면 스스로 원시인이었을 것입니다.
미당은 서당을 거쳐 보통학교 졸업 후 중앙보통고등학교에서 광주학생사태 주모자로 연루되어 구속이 됩니다. 이후 미당은 사상범으로 해방때가지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가산을 탕진한 기대를 저버린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1930년대 말경 평소 시대정신을 미당을 통해 알게된 읍내 젊은이들이 야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농촌계몽운동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써준 일이 있었습니다.
1943년 12월에 미당이 써준 시나리오를 김순환이 각색하여 공연하였는데 원작자가 밝혀짐에 따라 구속이 됩니다.
그때 마침 구세주같이 이하라라는 전북도경찰국 경부가 검찰에 송치되는 것을 막고 경찰에서 자체처리하는 방법으로 무려 6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당시 이하라는 경찰국경부라는 문학을 좋아하는 일본경찰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미당을 사상범으로 조사한 경력이 있는 미당을 평소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상범으로 보고된 명단을 보고 일부러 도경찰부의 조사차 출장을 자처하고 나와 석방시키게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이 연유가 되어 미당은 1944년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을 남기게 됩니다.
이하라 경부의 간곡한 호의로 불구속 석방된 미당은 1944년 6월 이후 1945년 봄까지 감시와 회유 그 억압의 아픔에 버텨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해방후 공무원, 교사, 기자, 교수 등 직장을 전전하며 28세에 아버지 잃은 장남으로서 빛을 찾아 이골 저골을 찾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천수를 누리면서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있는 자와 없는 자, 보다더 나은 삶의 갈등구조 속에 영혼들을 즈믄밤에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로 들어올리고저 하였습니다.
말년에는 1,625개의 산을 외우시고 스스로 질마재로 오시기까지 「서정주문학전집」(일지사 1972) 3, 자전부분「천지유정」계간지(시와시학사 1992) 봄에서 창피하고 또 창피한 이야기라고 하셨습니다. 그 외 공·사석에서 가슴아픈 이야기들로 수없이 몸을 낮추고 또 낮추셨습니다.
우리는 각 분야에서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잘된 일은 찾고 아닌 일은 수습해야 합니다. 이웃네는 별 보고 일어나고 눕는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일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중에서 큰 산을 오르는데 호랑인들 곰인들 독사인들 안만나겠습니까. 그 산은 날아드는 새들에게 숲은 돌아서지 않듯이, 높고 낮은 푸르른 봉우리들이 서로 이마를 짚어 주듯이, 서로서로 손을 잡듯이, 우리도 이제는 돌아 앉아 군불을 피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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