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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6. 지방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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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4일(월) 17:51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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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장객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4호
이 건물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것으로 선조 14년 (1581)에 건립하였다. 객사는 궐패를 모셔두고 현의 수령이 매달 초 하루 보름에 배례하는 정청과 왕명으로 지방에 내려오는 벼슬아치들의 숙소로 쓰이는 좌.우헌으로 구성된다.
이 객사의 정청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맛배지붕 건물로 초석 석재 하부는 네모지게 상부는 반구형으로 다듬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다. 우헌은 정청보다 지붕을 낮게 꾸미어 건물의 격식을 낮추었다. 이밖에 외대문 중문과 좌우량이 있었으나 남아있지 않다. 석축에 오르내리는 돌계단등에도 호랑이, 구름 무늬 등을 양각해 놓아서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건물 정면의 정원이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객사의 건물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형질을 변경했던것을 1990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2. 무장동헌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
무장읍성내의 무장초등학교 뒷편에 있는 이 건물은 조선 명종 20년 (1565)에 세워진 목조건물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팔작 지붕으로 현감이 집무하던 곳이다. 이 동헌은 높이 4.5m의 석축 기물 자체가 장중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한때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하면서 벽을 붙이는 등 원형을 변경 했다가 1989년 원형으로 복원되었다.
3. 흥덕당간지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당간지주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화강석으로 되어있는 이 지주의 높이는 410㎝ 폭 75㎝ 두께 55㎝이다.
흥덕향교 뒷산은 조선시대에 여단이 있었던 곳으로 대가람이 자리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없고 향교 입구에 커다란 당간지주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당간지주도 몰지각한 부락민에 의하여 절단 도괴되었던 것을 1987년 완전복원하였다.
이 당간지주는 1959년도에 실측된바 있어 그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다. 지주는 좌우대칭으로 양쪽 기둥의 외면경부는 활의 모양이고 내면 상단에는 장방형 간구를 새긴점 등 다른 지주와 같은 기본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다른데서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특징의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다. 이 지주는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절터의 유래에 대해서는 불분명하고 다만 갈공사지라는 말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4. 문수사 대웅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문수사는 해발 320m 곧 문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위에 해발 420m의 골짜기에는 내원암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만세루, 명부전, 문수전, 한산전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대웅전은 남향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 다포계 건물로 주불인 석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으며 한산전은 요사로 사용되고 있다.
현건물은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의 명승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건너가 청량산에 들어가 삼칠기도를 거듭한 끝에 문수보살의 계를 깨닫고 돌아와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 보니 산세, 수세가 모두 당나라의 청량산과 흡사하여 지금의 대웅전 위에 있는 굴속에 들어앉아 7일기도를 하자 역시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이곳에 문수도장을 개설했다는 것이다.
조선 효종 4년(1653)에 성오대사와 상유비가 중건 하였고 영조 40년 (1764)에 신화, 쾌영 두 화상이 선운사로 부터 이주해 와서 1차 중수를 하였고 현종 원년 (1835)에 우홍스님이 2차 중수하였다. 지금의 대웅전은 현종원년에 중수한 것이다.
5. 문수사 문수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2호
문수전은 대웅전 바로 뒷편에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맛배지붕 건물이다.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이며 기둥은 민흘림 형식이다. 공포는 주심포양식에 익공양식을 가미하여 짜여졌고 지붕은 부연을 달아 겹처마 형식을 취하였다.
이 문수전은 신화화상이 영조 40년(1764)에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함께 세운 것이다. 문수전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선운사 만세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
만세루는 사천왕문과 대웅전 사이에 있으며 정면 9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 건물로 정면 9칸 중 중앙칸은 3.9m 폭으로 가장 넓고 그 좌우 양칸은 각각 2.7m, 그 다음 좌우 각 3칸은 2.4m 폭으로 되어 있다. 주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이고 기둥은 민흘림 형식이며 공포는 익공 형식을 취하였다. 전후 주간에는 자연목을 대량으로 이용하였으며 이 대량이 간주를 괴고 있다. 좌우칸의 기둥 끝에는한쌍의 용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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