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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 나타난 민중의식

조창환<고창신문사장·문학박사>

2003년 11월 24일(월) 17:51 [(주)고창신문]

 

판소리는 처음에 오늘날의 배뱅이굿 같은 데서 볼 수 있듯이 아주 조잡한 단계의 것에서 출발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차츰 양반에게서 인정을 받아 상승하면서 양반의 기호에 맞는 문학적 수식을 갖추고 당시 유행하던 소설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 관념적 인과론에 의한 사고방식 또한 이와 관련된 전통적 가치관 의한 도덕적 주제를 지니게 되었다.



관념적 인과론의 한 측면은 人問의 운명이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 할 수 있는 초자연적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春香歌」에서 춘향은 선녀를 따라 천상에서 내려와 어머니 월매에게 잉태되었다고 하며 이몽룡과의 결연은 미리 예시되어 있다. 「심청가」에서 심청은 죽은 후에·天上어머니와 만나고,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이 세상에 회생한다.



「흥부가」에서는 제비가 물어 온 기적의 박씨로 형제의 운명이 뒤바뀌게 된다. 이러한 실정은 당시 유행하던 소설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아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관념적 인과론의 다른 한 측면은 인간은 惡을 멀리하고 善을 행하면 초자연적인 질서에 따라 반드시 복을 받는 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며 춘향은 열녀이기에, 심청은 孝女이기에, 흥부는 우애를 행했기에 모두 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하는 도덕적 주제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이러한 주제만 보여 준다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주제는 표면적인 것이고 주로 설명을 통해 역설되지만, 작품의 실질적인 전개에서는 이와는 다른 표면적인 주제가 구현되어 있다. 양반에게 애호받고 양반의 취향을 따르며 또한 보수적인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판소리의 일면이다. 판소리는 광대가 작자이며 창자인 민중의 문학이며, 광대는 양반의 욕구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사회적인 각성을 작품에다 표현하며 18세기 이후 역사적인 전환에 처한 시대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는 창조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러한 창조에는 민중 청자들의 요구가 반영되었다. 민요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고, 판소리는 청중을 위해서 부르는 것이니 양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판소리는 민요처럼 성격이 단일하지 않고 이처럼 양면을 가지는데, 이로써 구비문학은 영역이 확대되고 양반의 의식이나 기록문학의 전통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표면적 주제와 이면적 주제는 그냥 공존하는 것이 아니고, 결과적으로는 이면적 주제에 의한 표면적 주제의 부정이, 민중 의식에 의한 양반 의식의 극복이 일어난다.



이면적 주제로 나타난 것은 현실적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관념적 인과론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지 않으나, 현실적 합리주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실제 경험을 사고의 근거로 삼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하자는 태도이다. 민중은 늘 헌신에 입각한 사고를 해왔다고 할 수 있으니, 이 점은 민요 민속극 속담등에서 두루 확인되는 바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이러한 의식을 사회변화에 밀착시켜 폭넓게 형상화하고, 관념적 인과론과의 작품 내의 대조를 통해 표현한다는 점에 특이한 가치가 있다.



판소리는 어느 것이나 새로운 경제적인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 돈이 널리 사용되어 위력을 발휘하고, 돈을 떠나서 생활이 영위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돈타령이 도처에서 나타나는데 「흥부가」에서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이 사람아, 이 돈 근본을 자네 아나,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이 사람아, 이 돈 근본을 자네 아나,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 놈의 돈아 아나 돈아'



돈은 무엇이든지 상품화한다. 여러 가지 품팔이가 생기다 못해 매품팔이까지 나타난다. 인간의 운명은 초자연적인 질서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돈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효, 열, 우애가 인간의 할 이라고 해놓고, 금전적 이해관계의 추구가 치열하게 전개됨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치관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음을 그린다. 신분제에 입각한 질서는 무너져가고, 君子라고 분식되던 양반 지배층이 오히려 추악하게 취급되며, 인간적 해방을 성취하자는 요구가 대두한다.



「춘향가」는 표면적으로는 정절을 고취하나, 기생아닌 춘향과 기생춘향의 갈등에서 기생 아닌 춘향이 승리하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나 인간적 해방을 성취하자는 주장을 이면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卞學道와 춘향의 대결은 지배층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맞서서 인간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민중의 항거를 집약적으로 보여 준다.



「배비장 타령」에서 군자연한 배비장을 기생과 방자가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적벽가」는 중국소설 「三國지연의」의 개작이되, 원본과는 달리 전쟁으로 인해 야기된 군사들의 고통과 불행을 자세하게 다룬다.



이와 함께 신분적 질서를 지탱하고 있던 도덕률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흥부는 仁·義·禮·智를 두루 실현하고 있는 군자인데도 생활에 있어서는 무능하기 이를 데 없으며 바보에 가깝다. 표현적으로는 흥부를 옹호하나 결과적으로 흥부의 도덕률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게 한다. 놀부는 표면적으로는 악인이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해 기존 관념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행위가 생동하게 그려져 있기에 단순한 악인은 아니다.

「沈淸歌」의 심봉사 역시 참으로 군자이나, 뺑덕 어머니와의 관계에서는 군자의 정체가 허망한 것으로 폭로된다. 현실적인 것이 가치가 있고, 인간의 本性에 의한 행위를 긍정하자는 생각은「가루지기 타령」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약간의 표면적인 변명에도 불구하고, 「가루지기 타령」은 性愛야말로 가장 절실한 관심사임을 드러내고 결과적으로는 이를 예찬한 작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 표면적 주제는 언제나 엄숙하게 제시되어 삶의 현실을 부정하고 도덕성, 당위성을 긍정하려 하나 이면적 주제는 골계적으로 형상화되어 도덕적 당위성이야말로 허망하다는 것을 폭로하고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 18세기 이후의 역사적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도덕적 당위성을 긍정하려는 노력은 무너져가는 봉건적 이념을 지탱해 보려는 몽상이나, 삶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자는 주장은 근대적인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새로운 노선이다.

고창신문 기자  .
“서해안시대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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