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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면 용장마을 연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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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면 강양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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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12일(금) 17:53 [(주)고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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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3백50년전 12代 할아버님께서 호는 영모처사라 하였고, 성명은 강귀생이란 어른께서 마을터를 잡아왔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대 역사를 보면 1914年度 3月 1日字에 무장군, 흥덕군이 없어지고 1935年度 7月 1一字에 석곡면, 오산면, 벽사면이 없어지고 1935年度에 고창군으로 승격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좌청룡, 우백호등 용절이 뚜렷하게 있고 옛날 육송을 가꾸어 남향 온화지로 따뜻하고 그전 탁곡면, 석곡면으로 있을 때부터 子孫任께서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란 실농씨의 본을 받어 농사를 지어 조상봉제를 잘 하였고 매년 서당을 꾸며 한문을 주로 가르쳐 예문만 숭상하고 선산묘전에 立石을 제일 선착선으로 하였고 또 영모제실을 선착선으로 지어 雨雪이 내리면 영모제 제실에서 제사행사를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子孫들이 유순하여 6.25사변 난시에도 경찰 강주복님, 강주선님, 조희준님, 강성환님, 가족 4집이 있었지만은 무슨 말이 없이 무사히 지냈고, 그 뒤에 군경들이 진주하여 우리마을 들어와서 이 마을은 요순한 마을이라고 큰 칭찬을 하고 간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일을 볼진대 저의 마음 감탄하기 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마을은 경로당도 군내 다섯 번대 지어 현재까지 미풍양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강귀생님께서 심은 당산나무도 지금까지 보존하여 있고 또 농악기물도 지금까지 보존하여 유사시에는 사용합니다. 그리고 호는 인천이라 하였고 성명은 강지수 선생님 유장비를 청용등 입구에 세워져 있습니다. 용장마을은 서출동류수 합니다.
현재 저는 84세입니다만은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하여 교육에 열중하고 위선에 치중하고 과욕을 아니내며 무엇보다도 덕을 쌓아야 하고 우리마을을 모범부락으로 만들어 보려고 전 리장 김주업씨, 조희준씨, 강극신시, 박선희, 강주승, 박용규, 강병선님, 현 리장, 새마을지도자를 수시로 상봉하여 2002년도 3월에 정부보조 3천만원을 받았고, 외지에 거주한 친구들 연락하여 복지회관을 마을 한가운데 건축하여 화장실도 남자 화장실, 여자화장실 잘꾸며있고, 또 외지에서 오신 손님을 위하여 밖으로 또 한군데 만들었고 남녀노소간에 편리하게 모와 좋은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지냅니다.
그리고 우리 용장마을은 표구석이 동쪽한군데 서쪽 한군데 새워져 어서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말이 써 있습니다. 또 그리고 농촌이지만 시내버스가 오전 2번 오후 2번 왕래를 하여 편리합니다. 모든 백만사가 상의하면 못할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마을은 탁곡면으로 있을 때 십대손 강윤영씨께서 면장직을 하셨고 또 박동신씨께서 면장직을 하셨고 12대손 강달환이는 15년전 중앙청건설과 서기관으로 정년퇴임을 하였고 12대손 강재성이는 시청사무관으로 있고 12대손 강창균이는 전주에서 법무사로 성업을 잘하고 13대손 강현택이는 중앙정보원 부이사관으로 출근하며 근무를 충실히 잘 한다고 2002년 6월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까지 수여한 일도 있습니다."
2003년 아산면 용장마을 강양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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